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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다”

등록 2014-01-15 19:56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어금니 아파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치통은 견디기 가장 힘든 고통이라더니, 아주 그냥 영혼을 파괴하더만. 소금 물어라 우엉 발라라 마늘 물어라 귀 지압하라 등등 처방들, 전혀 보람 없음. 다음날 치과 가서 잇몸 까뒤집어 빡빡 긁어내고서야 깨끗해졌다. 왜 이리 갑자기 심하게 곪았나 모르겠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이 꼴이냐 따지길래 어제 곱창 씹어 먹었다고 정직하게 답하니 쯧쯧 혀 차며 막 뭐라뭐라 야단이라, 며칠 전부터 아팠지만 곱창집 도착 한 시간 전에 미리 진통제 먹었으니까 괜찮지 않으냐는 정당한 변명은 차마 꺼내지도 못했네. 억울했지만 그래도, 치과 만세!

건강한 이는 오복 중 하나. 식사 뒤 이틈에 남은 찌꺼기가 세균과 어울려 치태 되고 곧 치석으로 발전해 충치와 잇몸병 일으킨다. 잇몸병은 잇몸만의 병이 아니다. 치주질환 만성인 자는 아닌 자에 비해 암 사망률 2.4배, 치매 발병률 1.7배 더 높다는 실험 결과도 있으니, 이 잘 닦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 하라는 흔한 잔소리는 정말 살벌한 서바이벌 행동강령 아닌가. 그리고 건강한 저작운동은 뇌에 혈액 공급하고 대뇌피질 자극해 뇌신경 활성도와 인지와 기억 능력 높이는 효과도 있으니, 평소 꼭꼭 잘 씹어 먹자. 근데 잘 씹기, 그리 만만한 일 아니다. 사람의 이는 퇴화되어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인간은 진화했고 치의학도 이만큼 발전했는데 웬 퇴화? 질병 있고 없고가 아니라 이빨로 자르고 찢고 으깨는 힘을 따진다면 인간의 치아는 분명 퇴화했다. 식생활 때문. 굽고 삶고 찌기, 요리란 대개 음식물, 특히 고기를 씹기 편하게 만드는 방법이니 그만큼 덜 쓰게 된 이빨은 약해질 수밖에. 그러니 너무 부드러운 음식만 찾지 말고 씹는 재미 적당한 걸 씹어 버릇하자. 그래야 이, 특히 어금니가 튼튼해진다. ‘어금니 꽉 물어라, 옥수수 튄다’는 전통적 공갈을 명심. 과격한 운동 즐긴다면 마우스피스, 업계 용어로는 스플린트 사용도 고려해 보고. 격투기 중 부상 막기 위한 물건으로만 알려졌지만 운동 능력 향상 효과도 크다. 결정적 순간에 힘쓰려 어금니 악물고 버틴다. 특히 야구선수들이 애용, 박찬호 선수도 어금니 모두 닳아 턱뼈 통증 심각해 온종일 끼고 생활했다. 공 던질 때마다 어금니 하나에 가해지는 압력은 80㎏ 이상, 타자는 100㎏이 넘는다지만 힘쓰는 횟수만 보더라도 투수에 견줄 바는 아니니.

리처드 매시슨의 멸망기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 네빌 주변에는 치과의사가 없다. 당연하지, 네빌은 지상 최후의 인간이니까. 그래서 그는 늘 정성껏 칫솔질하고 치실로 마무리, 치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 최선을 다한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이빨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다.” 내공 웬만해서는 떠올리지 못할 명문장. 몇 차례 영화로 만들었지만 모두 원작을 뛰어넘지 못했다. 하긴, 작가 스스로도 그러했으니. 전설까지는 아니지만 꽤 멋진 표류기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도 잇몸병으로 고생한다. 의사들은 급성 화농성 치수염으로 추정하던데, 내 병이 바로 그거. 결국 스케이트 날로 이 뽑고, 아니 깨부수고 그대로 기절한다. 그 고통, 안다. 정말 기절할 정도로 아프다. 그러니 평소 이 잘 닦고 종종 스케일링하고 꼭꼭 씹어 먹자. 치통 앞에 생존 없다. 이 아프면 진짜, 지옥을 보게 된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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