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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바둑

재미난 인터뷰 ‘바둑관전의 별미’

등록 2009-06-16 18:28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이창호의 뒤를 이을 사람은 나와 이세돌뿐이다.”

이창호 9단이 세계대회를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1년. 19살의 중국신예 쿵제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보수적이고 딱딱한 인터뷰투성이인 당시 바둑계에서 쿵제의 인터뷰는 꽤나 재미있는 뉴스거리였다. 현 중국랭킹 2위인 쿵제는 최근 한국랭킹 1~3위를 모두 연파하고 TV아시아 선수권전에서 우승했으니 어릴 적에 자신이 한 말을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 10년 이상 세계 바둑계의 일인자로 군림해온 이창호 9단이 워낙 겸손한 사람이고, 인터뷰 때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우리 후배들도 그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다. 세계 일인자가 스스로를 낮추는데, 자기가 아무리 자신감을 피력해봤자 우스워 보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프로기사들의 인터뷰를 보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상대방의 실수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인터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것 같다. 이창호 사범님이야 천성이 조용하고 겸손하시니 그런 인터뷰를 하시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꼭 따라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1983년 일본 최대기전인 기성전에서 조치훈 9단이 도전권을 획득했고, 노장기사 후지사와 슈코 기성과 7번 승부를 다투게 되었다. 제1국의 전야제에서 후지사와 기성은 “딱 네 판만 가르쳐주겠다(4 대 0으로 이기겠다)”고 말했고, 이에 조치훈 9단은 “세 판만 배우겠습니다(4 대 3으로 이기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 바둑팬들이 이 인터뷰에 열광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권투선수가 상대방과의 시합을 앞두고 “상대방이 다시는 링에 오르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투의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역으로 1라운드 케이오(KO) 패를 당해도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다행히 요즘 젊은 프로기사들은 재미있고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를 종종 들려준다.

그 선두주자는 강동윤 9단이다. 올해 초 2009 한국바둑리그 개막식에서 “우리 팀은 보시다시피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다른 팀들에겐 재앙으로 다가갈 것입니다”라는 멋진 인터뷰로 현장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2007 한국바둑리그에선 이세돌 9단에게 승리를 거둔 뒤 “저와 이세돌 9단이 붙게 된 것은 상대 팀의 불운입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친 적도 있다. 바둑TV 기획 신예 기사들의 10초 시합에서 승리를 거둔 김주호 8단이 “저의 10초 바둑 실력이 강한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말해 배꼽을 잡고 뒹굴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대국 전 자신감 있는 인터뷰를 자주 하는데, 그것은 자신감을 피력하는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하다.


매주 생방송으로 벌어지는 한국바둑리그는 시합 뒤 승자 인터뷰를 하기에 성적 좋은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인터뷰를 자주 하게 된다. 일류 기사들이 재미난 인터뷰를 많이 선보인다면 바둑팬들은 승부를 감상하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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