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기자
타임아웃 /
경기시작 전, 야구기자는 덕아웃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선수들의 몸상태는 괜찮은지 봐야 하고, 그날 경기를 앞둔 감독의 얘기도 듣는다.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때로는 그날 승부를 설명하는 힌트가 된다. 하지만 얼굴이 낯선 선수를 보면, 대화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특히 주전선수가 아닌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그렇다.
엘지(LG)의 안치용(29)이 대표적이었다. 최근 5경기에서 매일 2안타씩 때려내고 있지만 얼굴은 무척 낯선 선수다. 그래서 경력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벌써 7년차다. 연세대 4번타자 출신인 그는 고려대 4번타자인 박용택과 함께 2002년 화려하게 입단한 선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는 6년 동안 1군에서 105경기에 출장해 안타를 고작 15개(통산타율 0.119)만 기록했다. 그런 그가 올 시즌 92타수 35안타 2홈런(타율 0.380)으로 펄펄 날고 있다. 박용택이 부상을 당하자 1군 출장기회를 잡고서부터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김경문 두산 감독의 말을 실감나게 하는 선수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2005년 현대에서 방출된 이종욱은 힘겹게 두산에서 다시 야구를 계속한 뒤 한국야구의 대표적 톱타자가 됐다. 기아의 차일목도 주전포수 김상훈의 그늘 아래 기약없는 후보였다. 올 시즌 김상훈이 부상으로 낙오하자, 그는 5년을 기다린 끝에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프로야구 2군 생활은 1군과는 정말 다르다. 이들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보내는 세월의 무게는 사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가 벌써 200만 관중을 돌파하며 500만 관중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이렇게 묵묵히 때를 준비한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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