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왼쪽 사진)과 이준서가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상대선수를 추월해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는 경기 뒤 반칙 판정을 받아 실격 처리됐다. 베이징/연합뉴스
충격, 분노, 황당….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는 지금까지 이 세 단어로 표현이 가능하다.
7일 경기가 단적인 예다. 황대헌(23)과 이준서(22)는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잇달아 반칙 판정을 받아 실격했다. 이어 열린 결승전에서도 심판 판정이 경기를 좌우했다. 헝가리의 류 사오린 샨도르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페널티를 받아 ‘노메달’에 그쳤다. 반면 중국 선수들은 이날 단 한번도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지 못하고도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다. 연이은 비디오 판독과 순위를 무용지물로 만든 심판 판정은 의구심을 낳기 충분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곧장 대응에 나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두 선수에 대한 판정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제빙상경기연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황대헌은 ‘접촉을 유발하는 불법적인 늦은 진로 변경’이 있었다. 경기 규정 위반으로 인한 실격 또는 부적격과 관련된 심판진의 결정에는 항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정 번복은 없다는 뜻이다.
선수단은 8일 오전에는 중국 베이징 메인 미디어센터(MMC)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며 강경 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도 직접 항의하겠다”고도 했다.
8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선수단 베이징겨울올림픽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오른쪽) 쇼트트랙 판정 문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윤홍근 선수단장. 베이징/연합뉴스
선수단은 황대헌·이준서가 상대 선수와 접촉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 겸 쇼트트랙 국제심판은 “황대헌 선수는 인(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는 작전을 썼다. 코너 입구에서부터 충분한 공간이 있어 무리 없이 들어갔고, 어떤 충돌도 없었다. 중국 선수가 제스처 취하는 걸 심판이 잘못 보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이준서는 정상적으로 인코스 출발해 두번째 자리 코너에 들어왔고, 같은 코너에서 정상적인 주로 활주를 했다. 심판진은 이준서 선수가 안으로 급격하게 들어왔기 때문에 실격이라고 판단했지만, 영상을 보고 판단한 바로는 헝가리와 중국 선수 (사이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 판정에 대한 우려는 개막 전부터 있었다. 대회 때마다 판정 논란이 끊이지 않아 국제빙상경기연맹이 추월 상황에서 발생하는 충돌·방해에 대해 추월자의 책임을 더 강화했기 때문이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추월하는 선수 쪽에 페널티를 준다. 이 때문에 올 시즌 열린 월드컵에서도 실격 사태가 빈번했다. 선수들이 “옷깃만 스쳐도 실격할 수 있다”(대표팀 곽윤기)며 경계심을 드러낸 배경이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왼쪽 사진)과 이준서가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상대선수를 추월해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는 경기 뒤 반칙 판정을 받아 실격 처리됐다. 베이징/연합뉴스
문제는 판정의 자의성이다. 쇼트트랙은 심판장, 보조심판 2명, 비디오심판 1명으로 이뤄진 심판진이 판정을 내린다. 서로 의견을 나누지만, 최종 결정권은 심판장에게 있다. 최 지원단장은 “심판장 양심에 맡겨야 하는 제도”라며 “(내부에선) 다수결로 결정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논의도 있다”고 했다. 이소희 쇼트트랙 코치는 “판정이 엄해졌기 때문에 선수들은 어떤 접촉도 피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한국은) 접촉 없이도 실격하고 중국은 명백한 반칙도 넘어가니 허탈하다”고 했다.
중국은 5일 혼성 계주 준결승에서도 헝가리·미국에 이어 3위로 통과했지만, 미국이 페널티를 받아 밀려나며 대신 결승에 올라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당시 중국은 바통 터치를 하지 않아 이른바 ‘블루투스 터치’ 논란을 겪었는데, 명백한 반칙임에도 심판진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비디오 판독이 경기를 좌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때로는 억울한 선수를 구제하지만, 특정 장면을 문제 삼아 페널티를 부여할 무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기량보다 판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쇼트트랙 자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복된 판정 시비로 규정이 빡빡해지며 종목 자체의 재미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 지원단장이 “심판이 경기를 지배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편 대표팀은 9일 열릴 남자 1500m·여자 1000m 예선을 위해 훈련에 매진한다. 최대한 팀 분위기를 다잡고,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