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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무지가 앗아간 세가지 환각

등록 2006-05-25 21:52수정 2011-12-13 18:01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흥교사, 화염산, 박통사언해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소. 대체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 앞에 번번이 낭패당한 것으로 회고되오. 13년 전쯤일까, 중국 산시성 시안에 갔소. 거대한 박물관을 외면하고 먼저 달려간 곳이 시안 교외 뚜치(杜曲)에 있는 흥교사(興敎寺). 신라 승려 원측(圓測, 613~696)의 사리탑을 보기 위함이었소. 경내 오른편에 3기의 탑이 솟아 있었소. 중앙의 큰 것이 현장법사의 것, 그 오른쪽이 수제자 규기(窺基)의 것. 왼편이 역시 수제자의 하나인 원측의 것. 탑의 감실에는 사천왕처럼 눈이 치켜올라간 원측의 조각상이 인상적이었소. 송대에 중수한 것이며 비문엔 원측의 행장이 소상히 새겨져 있었소. 다비를 했을 때 사리 49개가 나왔다고 되어 있었소. 그의 저서 <반야바라밀다심경찬>이 티벳어 역으로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내 발걸음이 일직선으로 흥교사로 향했던 것. 중국인 규기와는 달리, 어쩌면 원측의 사상이 이단으로 몰렸을지도 모른다는 실로 막연한 느낌을 한동안 물리치기 어려웠소.

흥교사 현판은 청대의 대정치가 캉유웨이(康有爲)의 글씨. 어째서 캉유웨이의 글씨를 간판으로 내세웠을까. 그것도 ‘有爲’ 두 글자는 적색으로 했을까. 모종의 위화감을 물리치기 어려웠소. 종교와 정치의 거리감 탓이었소. 이러한 위화감을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근자의 일이오. 학병 탈출 제1호에 해당되는 김준엽 씨의 탈출기 <장정>을 읽은 후이오. 충칭으로 모인 탈영 학병들이 시안에 있는 이범석 휘하에서 미군의 O.S.S.(전략정보기관)에 참여했는바 그들의 숙소가 바로 흥교사였던 것.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흥교사 경내에서 아마도 나는 또 다른 환각에 빠지지 않았을까. 신라승 원측과 광복군의 만남이 그것. 시공을 초월한 이런 만남이란 얼마나 굉장한가. 내 무식함이 이 감격을 막고 말았던 것.

이런 무지가 가져온 한스러움이 어찌 이에 멈추었으랴. 둔황과 우루무치 사이에 트루판이 있소. 해저 154미터 분지의 오아시스. 그 길목에 화염산이 있소. 구리의 머리, 쇠의 몸뚱이라도 녹여버린다는 이 화염산을 현장법사 일행이 넘어갔지요. 파초선을 갖고 있는 철선선을 정복한 손오공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 지금은 불 꺼진 그 화염산을 지난 곳에 베제크리크 천불동(千佛洞)이 있되 기가 막힐 정도로 훼손된 채 거기 있었소. 15세기까지 이곳 위구르족은 불교를 믿었기에 막고굴 모양으로 천불동을 조성했던 것. 그 뒤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들은 벽화와 인물상을 크게 훼손시켰던 것. 그렇더라도 제법 원형이 남아 있었는데, 독일 탐험대가 벽화의 벽까지 송두리째 뜯어갔던 것. 한발 늦게 이곳에 간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1910)는 이렇게 적었소. “이곳에서의 불상 발굴은 성과가 없었다”라고. 그럼에도 그들은 남은 부분을 또 수습했소. 오늘날 이 동굴 중심벽화의 복원을 위해서는, 우리 국립박물관에 수장된 벽화조각 한 점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알려져 있소. 오타니 수장품의 일부가 서울에 남겨졌기 때문이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벽면 앞에 섰을 때 나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으랴. 어찌 이뿐이랴.

화염산은 그래봤자 그저 산이었고, 서유기도 역시 한갓 소설에 지나지 않는 것. 이 소설의 완성본은 명나라 오승은의 것으로 되어 있소. 이런 대작이 한 사람의 단독저서일 이치가 없지요. 수많은 이본들로 조합, 완성된 이른바 적층(積層) 문학인 셈. 이본 연구가 왕성할 수밖에. 이러한 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는 썩 오래된, 그러니까 원나라 때 통용된 판본이 있소. 유감스럽게도 그 판본은 중국 천지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하오. 다만 그 판본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우리에게 있다면 어떠할까. 조선조가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박통사언해>(숙종 때)가 바로 그것이오. 그 내용 중에 몇 대목이 들어 있었던 것. “우리 책상에 책을 사러 가자”라고 묻고 “무슨 책을 사러 갈까”라는 식으로 된 중국어 회화책 <박통사언해> 속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차지국에 가서 백안대선과 투쟁하던 내용이 대화체로 들어 있었소. 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화염산은 내 앞에서 다시 불타오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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