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박이엽 옮김, 창비)의 저자 노마 필드 교수(미국 시카고대 동아시아학과)는 전후 일본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나 경계선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소. 내가 만났을 때 상냥한 중년 일본 여성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소. 당연히도 일본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저서도 영어로 내고 있었소. 그러한 씨가 <당생활자>, <해공선(蟹工船)> 등의 작가로 고명한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의 평전 <고바야시 다키지>(이와나미 신서, 2009)를 일어로 썼소. 일어로 쓰는 것은, 더구나 이 작가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도, 편집자의 권고에 힘입어 그렇게 했다 하오. 내가 이 장면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중어 글쓰기의 차원이 아니오. 이 책에 실린 사진 한 장 때문이오.
고문 끝에 죽은 고바야시의 시신 사진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 속에는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관(홋카이도 오타루 문학관)에 전시된 그 사진이 오늘날에는 철거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것도 들어 있소. 이 사진이 문학관에 전시되는 것은, 고문사(拷問死)가 국가 행위로서는 도리에 벗어난 짓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알아도 글자로만 읽고 아는 사람들에겐 중요할지 모르오. 그러나 그 비참함은, 오히려 그 때문에 그로부터 눈을 돌리거나 그것을 마음에서 지우기 쉬운 것이오. 더욱 딱한 것은, 만일 전시되었어도 눈앞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의식에서 사라질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인지라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보고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반응하는 것이 그 증거일 수도 있으리라.
이런 것들은 이웃 일본의 사정이라 우리와는 일단 선을 그을 수 있는 사안이라 할지 모르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소.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1945. 2.16)한 것도 바로 고바야시 다키지를 죽게 한 그 힘이었으니까요. 역저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에 따르면 규슈 의대의 생체 실험에도 이용당한 흔적이 있었다 하오. 모 구청에서 윤동주 문학관을 마련했다고 하오. 그러나 심히 아쉬운 것은 윤동주의 시신 사진이 전무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소. 친지, 가족들의 증언만 있을 뿐이외다.
잠깐, 지금 그런 여유 있는 말을 늘어놓아도 될 일일까. 그렇군요. 윤동주의 경우는 너무도 가파른 형국이었으니까.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스려야 적절할까요. 쉽사리 해답이 떠오를 수는 없지 않을까. 교토 소재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가보시라. 거기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소. 어째서 이 대학은, 또 교토 시민들은 그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일까.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이 시인의 죽음이 이런 시비라도 세워야 치유될 수 있는 실마리라도 될지 모른다는 믿음에서 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도시샤 대학의 미션스쿨다운 발상이라면, 또 교토 시민의 문화적 감각이라면, 이 치유 행위가 한-일 간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사의 굴절에 대한 치유를 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을까.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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