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지난 연말(2012.12)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일본 이와나미(岩波)의 문고판으로 나왔소. 한국 시의 대표인 윤동주의 시집을 이제야 가까스로 번역하여 문고판으로 만든 것. 잠깐, 그래 봤자 활자문화의 쇠퇴기에 지나지 않는 것. 그렇기는 하오마는 지금이라도 오히려 특정한 의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오. 일찍이 이 출판사는 <조선동요선>(1933)과 <조선 시집>(1954)만을 문고판으로 만들었소. 아마도 그들은 김소운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소.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김소운의 번역 태도에 그 나름의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뚜렷한 것은 원어와 대조하지 않았음이오. 조선어 말살의 분위기라 그랬는지는 헤아리기 어려우나 좌우간 김소운 식으로 했소. 가령 원시를 자기 식으로 고쳐서 번역한 경우를 들 것이오. 박용철의 <고향>에서 “마을 앞 시내도 옛자리 바뀌었을라”를 “동네 우물도 옮겨졌으리”라 했겄다. 그 때문에 사학자 모씨의, 일제에 대한 공격 자료로 인용될 지경이었소. 또 다른 김소운 식 번역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상 시 두 편의 일역이오. 이 두 편의 원시는 일실되어 지금은 찾을 길이 없는 것. <잠자리>와 <하나의 밤>이 그것이외다. 원시가 없는 마당이고 보면 일역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수습할 수 있는 것이오. 김소운 식 일역이 지닌 한 가지 현상을 엿볼 수 있소. 옳고 그름과는 별개인 한 가지 ‘현상’으로 말이외다.
또 다른 일역의 ‘현상’은 어떠할까. 이런 물음에 맞서는 것을 윤동주 시집의 역자에서 엿볼 수 없을까. 역자는 김시종. 1926년 원산에서 태어난 씨가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간 것은 1949년으로 되어 있소. 재일동포 1세로 왕성한 시 활동을 해왔고, 근자에는 <잃어버린 계절>(2011)로 다카미 준 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고 하오. 김소운 번역과 대비해 볼 때 비로소 그 의의가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소. 첫째 역시를 먼저 싣고 원시를 따로 실었다는 점. 둘째 당연히 자료 소개는 역자의 소임일 테지만 그것이 과도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는 점. 윤동주의 고향, 연희전문 유학, 도일, 일본의 대학 편력, 그리고 마침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고문과 죽음 등등은 한국 독자에게는 익히 알려진 바이나 이를 모르는 일본 독자에겐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김시종은 자료를 송우혜의 고명한 <윤동주 평전>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소. 김소운이 보았다면 독창성의 결여라 여길지도 모르겠소.
어째서 자기 해석으로 번역하지 못했는가. 이에 대해 김시종 씨는 할 말이 없을까. 나는 그것이 씨의 다음과 같은 시인으로서의 내공이 아닐까 싶소. 윤동주의 시는 정감과 서정을 혼동하는 그런 근대 서정시가 아니라 수법조차 뛰어나 현대적인 ‘사고의 가시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사고의 가시화’란 사고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눈에 보이듯 그린다는 것. 근대 서정시와 현대시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하는 것을 노래처럼 말하는가, 생각하는 것을 묘사하는가의 차이라는 것. 나는 이 점을 존중하오. 윤동주 시에서 깨친 씨의 독창성이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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