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교수 / 공병호 소장
“정치권력보다 오만가능성 적다”
“기업권력 자제력 잃었다”
“기업권력 자제력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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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세계화의 심층적 변화 결과 공병호=사회를 표층과 심층으로 나눠본다면, 김 교수가 말씀하신 기업사회는 표층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표층적 현상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전에 심층의 변화를 따져봐야 한다. 1990년 사회주의권 붕괴와 글로벌 자본주의화라는 심층적 변환이 있었다. 냉전의 시대로부터 세계화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고,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런 심층적 변화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 기업사회론에서 말하는 현상일 것이다. 사회=김 교수는 기업사회 특징의 하나로 정치·사회가 기업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기업에 봉사하는 구실을 하는 것을 꼽았는데…. 김동춘=우리 사회에서 ‘규제’라는 말이 쓰이는 방식을 보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규제를 그렇게만 봐선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규제 없이 그대로 놔두면 필연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사회공동체의 처지에서 보면 규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 경우를 말하면, 1990년대 세계화 담론이 등장했을 때 한동안 ‘기업에 국경이 없다’는 이야기에 동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1년 남짓 공부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울타리 없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라는 국가, 국민, 교육제도, 한국어 등의 인프라 없이는 대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한국이라는 국가적 인프라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횡행한다. 불필요한 통제는 좋지 않지만, 국가의 개입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미국에서조차 국가 개입이 있다.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 기업을 처벌하는 것조차 규제나 통제로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 어느 일간지에 대학교수가 삼성이 8000억원 내놨으니 이제 발목잡지 말라는 주장을 폈다. 이런 생각이 문제다. 사회가 기업에 봉사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공병호=중요한 것은 국민, 서민이 잘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통의 서민들에게 가장 화급한 것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를 위해 정치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치어리더, 유인자 구실을 해야 한다. 정치나 사회가 기업에 봉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물질의 풍요를 생산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사실에 있다. 일반 국민에게 풍요를 주기 때문에 기업을 돕는 것이다. 우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경쟁을 하고 있다. 김동춘=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일인 건 사실이고, 그래서 정치가 나서서 기업투자도 장려한다. 문제는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 소환이 국회에서 문제가 됐을 때, ‘우리가 이건희 회장 소환할 자격이 있느냐’ 그런 말들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렇게 국회의 정당한 활동까지 축소시키는 게 문제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발언을 했다. 법무부 장관이면 법이 우선이고 질서를 바로잡는 게 우선인데,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 / 공병호 소장
[김] 반사회적 행동 규제 필요
[공] 정부 법집행 공정성이 중요 공병호=정부가 법집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공정성이다. 위법한 행위는 명백하게 (처벌)해야 한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합법적 절차에 따른 정치의 역할이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발해 기업주의 편의를 봐주는 것, 나는 그런 건 납득하기 어렵다. 법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불법행위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사회=자유경쟁에 맡겨둘 경우 강자만이 살아남는데, 정부나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병호=국가가 앞장서서 재분배정책을 펴고 세금 부담을 높이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20세기에 이미 다 써본 정책이다. 지금은 자본이 무한 자유를 누리는 시대다. 세계의 규칙을 만들 힘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규칙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자본거래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면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 국가가 보호하려고 했던 서민이 결과적으로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재분배정책은 항상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만다. 김동춘=무한대에 가까운 자본자유, 기업자유 시대라고 하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서민의 삶의 조건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세계화 상황에서 복지국가 독일이 위기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시스템 작동을 개입 없이 내버려 두면 안 된다. 타협의 접점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를 풀면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규제를 철폐하더라도 한국의 인프라나 다른 여건이 매력 있어야 들어오지 규제만 푼다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탈규제보다 인프라가 중요하다. 규제만이 문제라면 삼성이 왜 유럽에 투자를 하겠나. 사회=김 교수가 글에서 ‘기업 파업’ 이야기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병호=20대 때부터 기업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말하면, 그들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여서 깃발 들고 파업하겠다고 협박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자본파업하는 건 불가능하다. 파업하자마자 다른 기업이 그 자리에 달려들게 돼 있다. 김동춘=공장이전이란 방식의 기업파업은 있을 수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회피하거나 공장을 국외로 이전함으로써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는 실례가 있다. 스웨덴도 그런 경험이 있다. 공병호=나는 기업가를 자유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독점 유혹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정거래위가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내부로 들어가보면, 그들의 심리는 매일 전전긍긍이고 노심초사다. 소비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언제 밀려날지 알 수 없다.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가 엄청난 권력이다.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를 지속할 수 없다. 고객에게 구애해야 하는데, 그런 비합리적인 일을 계속할 수 없다. 그들은 불안하고 취약하다. 김동춘=나도 그런 점에서 기업권력을 정치권력과 같은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있고, 일정한 수준에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 있는데 그게 안 될 때, 다시 말해 과도하게 상황을 장악하려고 할 때 공화국이라는 표현에 맞는 상태가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삼성이 공정거래위 조사를 방해하려 한다든지, 언론의 논조를 장악하려 한다든지 정권을 입맛에 맞게 창출하려 하는 것은 정당한 선을 넘은 상태다. 이런 상태를 두고 사람들이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견제해야 하는데, 기업의 권력에 비해 사회의 견제력이 너무 약하다. [김] 기업 과도하게 상황 장악
[공] 소비자권력이 불합리 견제 공병호=자제력을 잃었을 때 그런 오명을 덮어쓸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다. 힘이라는 것은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차이가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사업하는 사람들의 절망적 상황, 벼랑끝에 서 있는 상황을 한국 사회가 좀더 따뜻한 눈길로 봐줬으면 하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선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오만해질 가능성은 정치권력보다 훨씬 적다. 오만해지면 소비자로부터 멀어진다. 경제권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오만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적다. 정리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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