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문명기행>
남경태의 책 속 이슈/<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지음/한겨레출판 이슬람권과 관련된 사태가 발생하면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실제로 충돌인지, 통합을 위한 갈등인지, 혹시 대규모 전쟁의 서곡인지는 훗날 더 큰 세계사적 맥락에서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현재 동서양의 두 문명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두 문명이 충돌한다고 말할 때 동양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과 다르다. 동양이라는 말을 우리나라가 포함된 아시아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 말하는 동양이란 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뜻한다. 로마인들이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을 오리엔트라고 불렀을 때부터, 인도까지 온 알렉산드로스가 세상의 동쪽 끝에 왔다고 생각한 때부터 서양에서 보기에 동양은 곧 오리엔트였다. 사실 서양 문명은 중동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두 문명의 기원은 다르지 않다. 정작 다른 것은 동북아 문명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흔히 네 곳으로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황허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의 둘뿐이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으로 합쳐져서 서양 문명으로 전승되었고 인더스 문명은 실전되었다. 반면 황허 문명은 같은 장소에서 동심원적으로 성장하여 동북아 문명을 이루었다. 발생 과정이 전혀 다른 만큼 두 문명은 서로 다른 역사의 궤적을 걸어왔다. 동양사와 서양사, 이 두 역사의 한가운데서 한편으로 양자를 연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구분지은 것이 하필이면 서양 문명의 뿌리인 중동과 중앙아시아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나마 중동은 문명의 고대사에 포함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은 동양사에서도, 서양사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을 비롯해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들이 제법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은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크로드 자체가 하나의 ‘역사’인 만큼 중앙아시아사의 공백을 메우는 역사서로도 읽을 수 있다. 실크로드 답사단이 직접 찍은 사진과 답사 안내자이자 집필자인 지은이의 현장감 넘치는 서술은 딱딱한 역사를 소화하기 쉽고 맛있는 문화사로 바꿔주는 양념이다. 마침 지은이는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집트와 튀니지 등 이슬람권에서 공부했으니 두 세계를 잇는 가교의 역할로 손색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모두 53개의 짧은 글로 구획된 이 책에서 정작 실크로드와 직접 관련된 대목은 20개 남짓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베이징에서 이스탄불까지 서쪽으로 1만여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가운데 실크로드의 고전적 ‘정의’에 해당하는 구간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은이와 답사단이 주장하는 메시지는 더 큰 현대의 실크로드가 아닐까? 이제 실크로드를 둔황에서 사마르칸트까지가 아니라 베이징에서 터키까지, 나아가 한반도에서 서유럽까지 유라시아 전역을 관통하는 문명의 교역로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증오가 싹트는 토양이 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증오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미워하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하니까. 동서양 두 역사의 공백인 중앙아시아에 관한 무지를 극복하는 것은 무지스러운 증오를 불식시키는 지름길이다. 남경태/저술가·번역가
정수일 지음/한겨레출판 이슬람권과 관련된 사태가 발생하면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실제로 충돌인지, 통합을 위한 갈등인지, 혹시 대규모 전쟁의 서곡인지는 훗날 더 큰 세계사적 맥락에서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현재 동서양의 두 문명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두 문명이 충돌한다고 말할 때 동양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과 다르다. 동양이라는 말을 우리나라가 포함된 아시아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 말하는 동양이란 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뜻한다. 로마인들이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을 오리엔트라고 불렀을 때부터, 인도까지 온 알렉산드로스가 세상의 동쪽 끝에 왔다고 생각한 때부터 서양에서 보기에 동양은 곧 오리엔트였다. 사실 서양 문명은 중동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두 문명의 기원은 다르지 않다. 정작 다른 것은 동북아 문명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흔히 네 곳으로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황허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의 둘뿐이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으로 합쳐져서 서양 문명으로 전승되었고 인더스 문명은 실전되었다. 반면 황허 문명은 같은 장소에서 동심원적으로 성장하여 동북아 문명을 이루었다. 발생 과정이 전혀 다른 만큼 두 문명은 서로 다른 역사의 궤적을 걸어왔다. 동양사와 서양사, 이 두 역사의 한가운데서 한편으로 양자를 연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구분지은 것이 하필이면 서양 문명의 뿌리인 중동과 중앙아시아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나마 중동은 문명의 고대사에 포함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은 동양사에서도, 서양사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을 비롯해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들이 제법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은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크로드 자체가 하나의 ‘역사’인 만큼 중앙아시아사의 공백을 메우는 역사서로도 읽을 수 있다. 실크로드 답사단이 직접 찍은 사진과 답사 안내자이자 집필자인 지은이의 현장감 넘치는 서술은 딱딱한 역사를 소화하기 쉽고 맛있는 문화사로 바꿔주는 양념이다. 마침 지은이는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집트와 튀니지 등 이슬람권에서 공부했으니 두 세계를 잇는 가교의 역할로 손색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모두 53개의 짧은 글로 구획된 이 책에서 정작 실크로드와 직접 관련된 대목은 20개 남짓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남경태/번역가·저술가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증오가 싹트는 토양이 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증오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미워하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하니까. 동서양 두 역사의 공백인 중앙아시아에 관한 무지를 극복하는 것은 무지스러운 증오를 불식시키는 지름길이다. 남경태/저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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