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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의 힘’이여

등록 2007-08-24 20:44수정 2007-08-24 20:58

<생각의 탄생>
<생각의 탄생>
남경태의 책 속 이슈 / <생각의 탄생>
루트번스타인 지음/에코의서재

작가, 음악가, 미술가가 하는 작업의 공통점은 창작이라는 점이다. 창작은 물론 뭔가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하지만 단순히 만들어낸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런 의미라면 창작보다는 제작이나 생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창작이 제작이나 생산과 다른 점은 뭘까? 차이는 재료에 있다. 제작과 생산은 재료를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행위인 데 비해 창작은 아무런 재료도 없이 상상의 힘만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하지만 창작이라고 해서 무에서 유를 건져 올리는 건 아니다. 작가가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어휘와 문법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고, 작곡가가 짧은 동요 하나를 짓는 데도 음표와 화음을 다루는 법, 악기에 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휘와 문법지식, 음표와 화음, 악기에 관한 지식은 누군가의 창작이며, 그 원래의 창작자는 또 누군가의 창작에 의존했을 것이다.

이런 창작의 연쇄는 예술만이 아니라 지식이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창작도 마찬가지다. ‘날개 잃은 천사’라는 문구를 사용하려면 “천사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쑤신장군’이라는 아이디가 우습다는 것을 알려면 이순신 장군이라는 역사적 위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보일러 댁에 아버님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말이 유머임을 알려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 문구가 그 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창작이란 없는 셈이다. 모든 창작은 모방이며 표절이다. 바이올린의 격렬한 현은 폭풍과 파도소리를 모방하고, 풍경화가의 유려한 붓은 들판과 숲을 표절한다. 그러나 제대로 모방하고 표절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힘이 필요하다.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은 상상의 힘이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철학과 역사, 과학과 발명의 분야에까지 두루 작용한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에서 위대한 것을 끄집어내는 발상의 전환은 바로 상상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예술가, 학자, 역사적 위인들은 모두 ‘달걀을 깬 콜럼버스’다.

원근법의 발명은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려는 회화적 상상력의 결과였고, 〈젓가락 행진곡〉은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작곡가의 어린 딸이 집게손가락으로 연주한 ‘피아노 놀이’에서 탄생했다. 수학에 능하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남경태/번역가·저술가
남경태/번역가·저술가
유명한 사고실험을 통해 상대성의 개념을 발견했고, 알프레트 베게너는 대서양에 면한 세 대륙 해안선의 모양에서 유추를 통해 대륙이동설을 구상했다.

상상 속에서는 음악을 보고 미술을 듣는 일도 가능하다. 바흐의 대위법은 음악을 패턴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의 산물이었다. 현대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라벨의 음악에서 파란색과 녹색을 느끼고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푸르름과 투명함에서 17세기 중국을 상상한다. 이런 공감각적 이미지의 좋은 예로 교과서에 소개된 김광균의 시 〈외인촌〉이 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같은 시대의 시인 이상이 말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상상력인지도 모르지만.


남경태 / 저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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