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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기호의출판전망대] 황석영이 만드는 한국문학의 희망

등록 2007-08-31 21:16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원죄와 속죄 등의 크리스트교 이야기, 인식과 평등에 의한 인지와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계몽 이야기, 구체적 사물의 변증법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이야기, 기술 산업적 발전을 통해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같은 ‘커다란’ 이야기는 더는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긍정적 눈길을 보내는 리오타르는 그래서 커다란 이야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작은’ 이야기가 생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출판시장에서 통하는 작은 이야기의 대표격은 일본소설이다. 일본 소설은 정말로 개인의 사소한 이야기를 잘도 다룬다. 일본소설 붐이 일자 유망한 젊은 작가 중에 일본소설의 흐름을 좇은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중은 모조품보다 원조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니 일본소설의 주가만 올려주고 자신들은 거의 망하다시피 했다. 적어도 지금의 10대와 20대에게 한국의 이야기(소설)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이야기, 특히 이야기의 가장 근원적 매체인 소설에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커다란 이야기이면서 작은 이야기라고 본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되 전체를 조망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최근 그런 작품이 하나 나왔다. 바로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미 〈바리데기〉가 작가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감히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을 본 독자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바리데기〉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이 겪는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세계사적인 구조와 연결짓는 탁월한 구성에 있다.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밀항해서 무슬림 청년과 결혼한 가난한 ‘탈북소녀’의 개인사가 세계사적 변전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쉽게 읽히는데다 크나큰 감동을 준다. 또 우리 독자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에게도 통할 만큼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말장난 같은 문체의 힘이나 대중의 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수준과 차별화되는 소설의 미덕이 제대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통 리얼리즘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주인공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목에서는 환상의 힘을 빌리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기법을 도입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마저 해체해 버리는 새로움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더욱 기쁜 것은 작가가 자발적으로 독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황석영은 서점 등 독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좌판을 깔아놓고 사인 판매를 통해 판매부수나 늘려보자는 수준이 아니라 젊은이들과의 격의 없는 토론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 소설이 일본소설보다 우수하다는 자신감을 설파하고 있는 셈인데, 이번에는 작가가 아주 작심하고 나선 듯하다. 앞장서 독자에게 한국소설 전체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충정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작가의 최근 행보는 1970~80년대의 문화운동이 대학가의 흐름을 이끌어내 결국 우리 문화가 고양됐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해서 일궈놓은 밭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이는 그를 뒤따르는 젊은 작가들일 것이다. 이런 노력이 더욱 많아질 때 우리는 진정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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