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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차가운 지식이 주는 뜨거운 감동

등록 2007-09-07 18:36수정 2007-09-07 19:48

지식ⓔ 〈교육방송〉 지식채널 지음/북하우스
지식ⓔ 〈교육방송〉 지식채널 지음/북하우스
남경태의 책 속 이슈 / 지식ⓔ 〈교육방송〉 지식채널 지음/북하우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지식을 권력과 등치시켰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식이라는 말은 은근히 권위를 가진다. 그 이유는 뭘까? 아마 엄숙하고 진지한 학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어의 기원과 여러 언어의 음운론적 차이를 연구하는 언어학, 상품의 생산과 자원의 배분을 다루는 경제학, 세포의 구조와 생명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생물학, 이런 것들을 가리켜 보통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식을 영어로 ‘놀리지’(knowledge)라고 말하듯이 원래 지식이란 특별한 앎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앎을 뜻한다. 푸코가 말하는 지식도 프랑스어에서 조동사처럼 자주 사용되는 ‘사부아르’(savoir), 곧 평범한 앎이라는 뜻인데, 번역 과정에서 지식이라는 거창한 개념어로 바뀌었다. 따라서 지식이라고 하면 물론 정치학, 의학 같은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지식도 뜻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마파두부를 요리할 줄 아는 것, 흔히 기술이나 정보라고 부르는 것도 당당히 지식에 포함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우리는 모두 지식인이다.

학문적 의미의 지식,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상식과 정보라는 의미의 지식, 이 두 가지 이외에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을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지식ⓔ〉다. 여기서는 볼 수 있는 지식의 또 다른 성격은 감동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책으로 꾸몄으나 이 책에 실린 도판들은 텔레비전 영상처럼 주인공의 노릇을 하지 않고 텍스트와 같은 구실을 한다. 1970년대 어린이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사진은 텍스트를 장식하는 기능이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든 미시파시즘의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텍스트다(이 대목의 소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조건반사’다).


특정한 지은이가 없는 책이 그렇듯이 이 책은 지식을 앞세워 어떤 의도를 관철하려 들지 않는다.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주제도 있지만 흥미롭고 평범한 상식도 있다. 또한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시점(視點)도 무척 다양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대목에서 열여섯 살짜리 고등학생은 계엄군이 들어오면 죽는다는 어머니의 말에 “군인들이 들어오면 손들고 항복하면 되지” 했다가 마지막 날 밤 집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인자부터는 밖에 못 나가요. 나 그냥 여기 끝까지 남기로 했어.” 그는 결국 교련복 차림으로 계엄군에게 사살되었다.


남경태/번역가·저술가
남경태/번역가·저술가
지식은 학문을 발전시키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다. 이런 지식은 기본적으로 뭔가를 가르치는 기능을 한다. 계몽적이고 교육적이며 유익하다. 미디어를 ‘핫’과 ‘쿨’로 나눈 마셜 매클루언의 분류를 차용하자면 이런 지식은 ‘핫’ 지식이다. 논리가 정연하고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지식은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쿨’하게 사실과 내용을 늘어놓을 뿐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감동이라는 핫 코드를 전달하는 방식이 쿨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남경태 / 저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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