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
문단 안팎에서 농담처럼 회자되는 말 중에 ‘실버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 추세 속에 ‘실버산업’의 경제 잠재력이 막대하다는데, 그렇다면 문학에서도 일종의 실버산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고령의 문학 생산자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와 단행본, 기타 문화센터 등의 사업이 그에 해당하겠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40, 50대는 물론 60대 당선자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문학은 대표적인 ‘올드 장르’로서 나이 든 창작자 및 향수자에게도 접근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분야인 까닭에, ‘실버문학’이라는 것이 단순한 흰소리만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단 현실은 이 점에 관한 한 둔감하달까 냉정하기 짝이 없다. 문단이란 대체로 문예지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대부분의 문학 계간지 편집위원들은 40대와 30대가 주축을 이루며 드물게 20대가 끼여 있는 양상이다. 문예지 편집위원들은 대체로 자기 또래의 시인·소설가 들에 우호적이어서 그들의 작품을 주로 청탁해 싣고 그에 관해 평론을 쓰곤 한다. 50대 이상의 시인·소설가 들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입’이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가을호로 새롭게 창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의 문학〉이 일종의 ‘실버문학’을 위한 전진기지가 될지 주목된다. 이 잡지의 주간은 시인 이근배(67)씨가 맡았으며 다른 잡지들의 편집위원 대신 편집자문위원을 두고 있는데, 이어령·이호철·유종호·박완서·김윤식·신경림·황동규씨 등 편집자문위원 일곱 사람이 모두 1930년대생이다. 사실상 우리 문단의 최고령층에 해당한다. 주간과 편집자문위원들의 높은 연치가 어떤 식으로든 잡지 편집 방향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창간사에도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할 만한 구절이 있다. “새로움의 추구는 정통성의 부정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정신적 바탕 위에서 다양성과 실험의식으로 절대성과 보편성을 넘어서 미래를 열어가는 것” “작가와 작품의 평가에 있어 과장되거나 편협되거나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시류에 밀리고 유파에 함몰되지 않았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등의 선언에서는 젊음과 새로움이 지배하는 시류에 맞서 과거와 전통의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가 읽힌다.
이 잡지는 창간특집으로 〈바리데기〉의 작가 황석영씨를 다루었는데, 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가 동료 평론가 임규찬씨와 대담을 하는 가운데 “(젊은 작가들이)몇몇 작가를 제외하곤 세계 인식이 좁고 조밀하지 못함을 감각과 감정과 포즈로 대신한다”고 발언한 대목도 주목된다. 창간호에는 이 밖에도 암 투병 중인 이청준씨가 단편 〈이상한 선물〉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이호철·김원일·윤후명씨 등의 소설과 김종길·홍윤숙·김남조·정진규씨 등 원로들의 시가 젊은 문인들의 작품과 나란히 수록되었다.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문학사의 라이벌’이라는 연재의 첫 회로 평론가 백철과 임화를 다루었다.
물론 〈문학의 문학〉을 순전히 ‘실버’들만을 위한 잡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경쟁적으로 ‘젊음’과 ‘새로움’을 향해 치닫는 문단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노소동락(少同)’. 늙은이와 젊은이가 한데 어울려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이 문학에서도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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