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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차라투스트라’ 박상륭을 기다리며

등록 2007-10-05 19:16수정 2011-12-13 16:52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노력이민 혹은 기술이민을 아시는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60년대. 그대 형제자매들은 광부로, 간호원으로 낯선 땅 호서(湖西)로 갔소. 오토(烏兎)의 흐름 속에서, 시체보관실의 박명 속에서, 혹은 뒷골목 책가게의 흐린 등잔 아래서 그대는 기를 쓰고 떠나온 고토를 잊으려 하지 않았던가. 방법은 단 하나. 중원(中原)의 어법으로 하는 글쓰기가 그것. 대체 그런 글쓰기란 무엇인가. 그대에게 그 방법론을 가르쳐준 스승은 석가세존이 아니었던가.

10년 만에 그대는 의기양양하게 고토를 밟았소. 등에는 현장법사모양 중원의 어법으로 쓴 경전 한 짐 짊어지고서. 왈, 〈칠조어론〉(1994). 28조 보리달마에서 혜가, 홍인을 거쳐 6조 혜능까지가 35조라면, 그대는 감히 대가 끊긴 6조를 잇는 7조라는 것. 이 굉장한 외침엔 그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소. 도반(道伴)이여!로 시작되는 이 중원의 어법이 ‘잡소리’만 듣던 고토의 중생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별수 없이 그대는 바랑을 챙길 수밖에. 쓸쓸히 돌아가는 그대 뒷모습을 엿본 자가 있었을까. 만일 있었다면 소설을 수필이라 우기는 고집쟁이 〈관촌수필〉의 글쟁이가 아니었을까.

호서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그대는 다시 깊은 사색에 빠질 수밖에.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잡소리’를 듣는 귀밖에 없는 호동(湖東)의 중생에게 초인의 사상을 펴고자 한 것이 그토록 잘못인가. 그대는 이 귀먹은 중생이 하도 안타까워 다시 견딜 수 없었소. 그대는 다시 하산할 수밖에.

이번에 그대를 가르친 스승은 석가와 동시대의 자이나 바르다마나였소. 그 경전 이름은 왈,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2003). 이래도 귀가 뚫리지 않는가. 최소한 차라투스트라가 누군지 아는 중생이 어찌 없으랴, 라고 외면서.

딱하게도 이번 역시 고토의 중생들은 외면해 마지않았소.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잡소리’에 그토록 중독되었으니까. ‘도반이여!’ 대신 이번엔 ‘초인이여!’라고 외친 형국이었으니까. 중생이 어찌 초인의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그대는 물러설 수 없었소. 그대가 익힌 이 중원의 어법, 그 초인 사상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그 길만이 중생을 구하리라 믿었으니까. 이번엔 썩 자신이 있었다고나 할까. 초조했다고나 할까. 동굴로 돌아간 지 불과 2년 만에 그대는 홀연 고토에 왔소.

등에 짊어진 것은 장자. 진짜 중원의 어법인 남화자(南華子)의 목소리. 그게 제일 ‘잡소리’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 왈, 〈소설법〉(2005)이 그것. 장자의 어법대로 ‘내편’ ‘외편’ ‘잡편’으로 된 〈소설법〉도 중생의 귀엔 여전히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어째서? ‘잡소리’에 너무도 중독된 중생들이었으니까. 그대는 망연히 뒤돌아 호서 동굴로 향할 수밖에. 쓸쓸히, 쓸쓸히도.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초인이여, 차라투스트라여, 카인이여, 우리의 패관 박상륭이여. 중원의 어법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고토의 징조가 아직도 그대 초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가.

설사 아직 보이지 않더라도 그대, 동굴에 홀로 칩거해도 될 일인가. 우리의 형제 카인이여, 그대의 하산은 아직 기약 없는가. 아벨이 없는 아비의 외로움을 외면해도 되는 일인가.

김윤식 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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