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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멋지다! 국문학 출판 외길 10년

등록 2008-02-15 19:41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15일 저녁 서울 서초동의 한 호텔 2층 행사장에 내로라하는 국문학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구중서, 임형택, 심경호, 김명인, 김재용, 안대회, 권성우, 정선태, 홍기돈, 하정일, 김행숙씨 등 노장과 소장, 현대문학과 고전문학 전공이 두루 포함된 50여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중문학자 민정기·이정재씨와 사회학자 고병권씨, 그리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한 출판사의 탄생 10돌을 기념하는 생일잔치였다. 주인공은 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소명출판. 10년 전인 1998년 2월 17일에 문을 열었다.

“아이엠에프의 와중에 웬 출판사 창업이냐며 다들 말렸죠. ‘미쳤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나름대로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전망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때까지의 국문학 학술 저서들은 책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하면 최소한도의 조악함은 면할 수 있겠다 싶었죠.”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성모 대표가 5년 동안의 출판사 편집자 경험을 바탕 삼아 소명출판을 창업한 변이다. “공부하다가 스스로 한계를 느껴 출판계에 입문한 터에 누군가의 공부 결과를 제대로 세상에 빛 보게 해 주는 게 학문에 진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창업 반년 만에 고미숙씨의 박사논문 〈18세기에서 20세기 초 한국 시가사의 구도〉를 첫 책으로 선보인 이래 얼마 전에 나온 〈백철 연구〉(김윤식)와 〈김수영과 신동엽〉(이승규)에 이르기까지 500여 종의 책을 냈다. 그중에는 학술진흥재단에서 위탁받은 ‘동서양 학술명저’ 100종 가까이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서 시리즈처럼 ‘알바’ 차원에서 낸 책들도 포함돼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동안 낸 책의 60%가 국문학 연구서들이다.

사장과 편집자 1명, 달랑 두 명으로 출발한 회사가 10년 사이에 사장 포함 직원 5명으로 ‘성장’했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1만부 넘게 팔린 책이 단 한 종도 없다. ‘국문학 출판 외길 10년’이 얼마나 험한 가시밭길이었는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학술원과 문화관광부 등의 우수학술도서 지원 제도가 없었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토로했다. 그렇지만 국문학자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출판사인데다, 출판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소명출판의 책들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획 거리를 내장하고 있는 ‘원석’으로 꼽힌다. 한기호 소장은 “소명출판이 국문학자들과 신뢰의 바탕 위에서 출판과 학문이 연대하는 공동체적 실험을 해 오고 있는 모습이 어여쁘다”며 “이런 아름다운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공공도서관이 좋은 책을 더 많이 구매해서 출판사가 안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소명출판의 책들만으로 한국문학사를 완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았다. 창립 10주년인 올해는 역시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는 임화의 글들을 모아 전집을 낼 계획이다. 출판사 설립 당시부터 염두에 두었던 일로, 실제 준비에만 만 8년이 걸렸다. 15일 창립 기념행사 자리에서 그는 ‘임화문학상’을 제정해서 올해부터 시행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전집도 그렇고 문학상도 그렇고, 우리보다 더 내실 있는 출판사에서 맡았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끌어안는 게 과욕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그는 겸손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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