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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또다시 반동의 시절…김수영이 그립다

등록 2008-03-14 19:44수정 2008-03-14 19:46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수상쩍은 세월이다. 반동의 시절이다. 환멸의 나날이다. 때 아닌 이념과 색깔을 들먹이면서 문화예술계에 해묵은 ‘빨갱이 사냥’이 벌어질 조짐이다. 장관이 북을 치면 보수 언론은 장구와 꽹과리를 울려 대며 여론 몰이에 나선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읽을 만한 문학 신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작고한 시인 김수영의 글이 생각나는 이즈음이다. 6월이면 그가 타계한 지 40주년이 된다. 서가에서 그의 산문집을 꺼내 들춰본다.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는다.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한다. 그리고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문화의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68년 1월호 〈사상계〉에 실린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40년 전 김수영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간섭주의적 문화정책’이 곱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 아니겠는가. 이 글을 계기로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 사이에 참여문학 논쟁이 벌어졌거니와, 이어지는 글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에서 김수영은 저 유명한 ‘불온성’에 관한 옹호 선언을 내놓는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매한 위정자와 사이비 문화인, 반언론적 언론 들은 불온의 비읍자만 나와도 곧바로 “빨갱이!” 하며 단말마적 비명을 질러댄다. 김수영이 1960년 8월에 발표한 짧은 글 ‘치유될 기세도 없이’를 보자. “없는 사람이 잘살아 보겠다고 하는 운동을 노골적으로 억압하는 정부의 처사가 상식화되어 가고 있는 사태처럼 요즈음 우리들을 다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 경북 교조(교원노조)나 경방(경성방직) 파업문제 같은 것만 하더라도 당국의 태도는 여전히 ‘빨갱이’에 대하는 태도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흡사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강제 해산을 두고 쓴 글처럼 읽힌다. 내친김에 〈통일문학〉 반입 불허에 대한(?) 글을 찾아본다. 아닌 게 아니라 1961년 3월에 쓴 ‘시의 ‘뉴 프런티어’’라는 글이 있다. “나는 이북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사업이야말로 문교당국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이는 아니 되고, 이러한 문화활동은 한국 문화의 폭을 넓히는 것 이상의 커다란 성과를 가지고 오리라고 믿는다. 불온서적 운운의 옹졸한 문화정책을 지양하고 명실공히 리버럴리즘을 실천해야 하며, 이 사업은 남북 서한교환이나 인사교류에 선행되어야 할 획기적인 뉴 프런티어 운동인 줄 안다.”


김수영이 그립다. 그가 살아 있다면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아마도 〈그 방을 생각하며〉와 같은 환멸과 반어의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 //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그 방을 생각하며〉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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