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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분단 격랑 속에 휩쓸려가버린 사랑

등록 2008-05-02 20:47

분단 격랑 속에 휩쓸려가버린 사랑
분단 격랑 속에 휩쓸려가버린 사랑
분단과의 멈추지 않는 40여년 싸움
연인·남매 이별로 아픔 ‘형상화’
과거·현재 잇는 작가의 비원 뚜렷
〈오마니별〉
김원일 지음/강·1만1000원

40년 넘는 작가 생활 동안 가족사에 투영된 분단의 아픔을 집요하게 형상화해 온 김원일(66)씨가 새 소설집 <오마니별>을 펴냈다.

“남북 분단 육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통일은 요원한데, 남북조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민족의 고통과 그늘이 여기 실린 소설의 주조를 이루었다.”(‘작가의 말’)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으로는 일곱 번째가 되는 새 책에서도 작가는 분단이라는 괴물을 상대로 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책에 수록된 여섯 편 가운데 네 편이 분단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표제작이 대표적인데, 이 작품에서 분단의 고통은 피난길에서 헤어져 평생을 남남으로 살아 온 오누이의 한스러운 사연을 통해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미군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고 누이와도 생이별한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남동생, 그리고 미국과 전쟁에 대한 거부감으로 똘똘 뭉친 늙은 누이가 ‘오마니별’이라는 아잇적 말을 매개로 서로를 확인하는 결말은 분단 극복을 향한 작가의 비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포로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하던 중 반공포로의 누이동생과 맺었던 연분을 잊지 못해 수용소가 있었던 섬을 다시 찾곤 하는 노인을 주인공 삼은 <용초도 동백꽃>은 표제작과 함께 ‘노년의 동화’라 이를 만하다. 이념을 앞세운 대결과 살육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오히려 더욱 절박하게 불타올랐던 청춘의 사랑은 세월의 급류에 휩쓸려 아련한 추억과 쓰라린 회한만 남겼을 따름이다.

“저녁바람이 이렇게 드세니 동백꽃도 뺨따구 맞듯 다 져버리겠어. 진 꽃잎은 땅에서도 서성거리지 못해 바다로 쓸려가 버리겠고. 동백꽃은 왜 선혈처럼 그렇게 붉고 붉은지…”

주인공 김노인의 혼잣말은 이념과 역사의 격랑에 속절없이 쓸려가 버린 청춘의 사랑을 향한 조사처럼 들린다.


<오마니별>과 <용초도 동백꽃>에서 분단의 아픔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헤어짐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두 작품 모두에서 정치와 이념이 인간과 사랑의 맞은편에 놓이는 것도 공통적이다. <용초도 동백꽃>은 김노인을 일인칭으로 삼아 포로수용소의 연원과 역사를 서술한 ‘대 서사’(=큰이야기)와 민박집 여주인 민이네의 시점을 통해 삼인칭으로 서술되는 ‘소 서사’(=작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 서사가 역사에 속한다면 소 서사야말로 문학의 본령에 가깝다. 전쟁고아였다가 북파공작원으로 포섭된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임진강>에서도 역사와 문학의 길항과 습합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들이 과거 역사로서의 분단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카타콤>은 현재형으로서의 분단을 문제 삼는다. 북한 잠입 선교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이 소설에서도 작가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이념과 정치와 종교 등 모든 가치에 앞서는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이다. 주인공 강 목사는 선교라기보다는 차라리 난민 구호 차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땅을 드나든다. 이념이나 종교보다는 굶주려 죽어 가는 동포들을 살리는 일이 그에게는 더 시급하다. “생명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목 ‘카타콤’에는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선교, 그리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서 초기 기독교의 지하 교회처럼 버티고 있는 북한 체제라는 이중의 의미가 들어 있다. 작가의 간단치 않은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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