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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경리와 박완서의 ‘닮은 문학’

등록 2008-06-06 21:55수정 2011-12-13 17:02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빈소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작가 박완서 씨가 “항상 손이 따뜻하고 부드러우신… 큰형님이자 어머니이고 선배였던 분”(<한겨레>, 2008.5.6)이라 했다는 보도를 보았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불세출의 화가 반 고흐의 편지(No.442) 한 구절이었소. 과로로 쇠약해져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왈, 그대는 대장장이인가. 이 말이 그럴 수 없이 기뻤다고 화가는 적었소. 화가를 두고 노동자로 본 의사의 말이 어째서 그토록 화가를 기쁘게 했을까. 두말하면 군소리. 예술이란 중노동이라는 것. 그것도 온몸으로 하는 것. “알어? 이 재봉틀을 믿고 원주로 왔어. 이를 믿고 <토지>를 썼지”(공지영씨의 전언)라고 말한 작가 박경리의 손이 부드러울 수도 따뜻할 수도 없는 법. 필시 그 손은 반 고흐의 손처럼 대장장이의 손 바로 그것이었을 터. 그렇다면 <오래된 농담>의 작가 박완서씨는 거짓말을 했을까. 그럴 이치가 없소. 하도 안타까워 농담을 조금 했을 터. 그러니까 <토지>의 작가의 손이 따뜻하거나 부드러웠던 것이 아니라 원주 토지문화관 텃밭의 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을 터. 왜냐면 밤낮 들고양이와 산새와 별과 달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흙을 반죽처럼 주물렀으니까. 대장장이의 손으로 만든 <토지>이기에 따뜻하고 부드러울 수밖에. 그렇지만 <토지>가 부드럽고 따뜻하기 위해서는 목숨 전부를 걸어야 가능했을 터. 왜냐면 예술이란 타협일 수 없는 세계의 산물이니까. 실패하면 “이 재봉틀로 삯바느질을 한다”가 그것이외다. 재봉틀을 20년간 돌린 손이 대장장이의 손이 아니고서는 어찌 <까마귀 나는 보리밭>, <토지>가 가능했을까 보냐. 어림도 없는 일. 그런데 보시라. 저 숨막히는 누런색 보리밭과 까마귀 떼의 현란함을. 또 보시라. 섬진강변 하동 땅 평사리 최참판 댁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저 현란한 능소화의 숨막히는 화려함을. 동학도 김개주에게 겁탈당한 윤씨 부인, 별당 아씨를 훔쳐낸 그 아들 김환, 그리고 목 졸려 죽은 당주 최치수 등등으로 얼룩진 최참판 댁의 운명적 어둠을 밀어내고 거기에다 천박하지만 화려한 빛깔을 부여한 문학적 솜씨를.

등잔불을 바라보는 환이 귓가에 부친의 목소리가 울려오는 듯하다. “아버님, 소자는… 그렇지만 아버님 불쌍한 서희에게….” 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 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 댁 담장이 떠오른다. 비가 걷힌 뒤의 돌담장에는 이끼가 파랗게 살아나 있다.(솔출판사판, 제1부 3권, 333쪽)

?능소화(凌宵花). 글자 그대로 하늘을 능가하는 꽃. 온통 붉은색의 이 넝쿨식물이야말로 최참판 댁의 상징 그것이었던 것. 이 숨막히는 능소화의 화려함과 천박함이 바로 최참판 댁의 운명의 색깔이었던 것. 이 사실을 서울 한복판 중산층의 수준에서 정확히 복창한 것이 바로 장례위원장 박완서씨가 아니었던가. 의사 지망생 청년 영빈의 입을 빌려 씨는 힘껏 묘사했것다. 여름이면 이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의 꽃으로 뒤덮었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며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아주 오래된 농담>, 실천문학사, 2000, 12쪽)

돈밖에 모르는 미모의 여주인공 현금이처럼 능소화는 황홀하지만 여전히 ‘헤프고 천박한’ 꽃이었던 것.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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