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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쟁이 끝나려나…다시 학교엔 언제쯤…

등록 2008-07-18 19:38

전쟁이 끝나려나…다시 학교엔 언제쯤…
전쟁이 끝나려나…다시 학교엔 언제쯤…
미사일·폭탄·굶주림·두려움…
꿈을 앗아간 전쟁의 참상
여덟명 아이들의 일기 모아
〈빼앗긴 내일〉
즐라타 필리포빅·멜라니 챌린저 엮음·정미영 옮김/한겨레아이들·9000원

창문 근처에 갈 수가 없다. 언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공원에 폭탄이 떨어져 친구가 죽었다. 시장에 나간 엄마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보고 혼비백산해 돌아온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장고에 있던 고기와 채소로 마지막 만찬을 먹은 것이 2년 전의 일이다. 하루에도 500개씩 폭탄이 떨어진다. 사라예보에서 1만5천명이 죽었고, 그 가운데 3천명이 어린아이다. 5만명이 장애를 입고 팔다리 없이 목발이나 휠체어에 의존해 거리를 걷고 있다. 공동묘지에는 자리가 없어 희생자를 공원에 묻는다. 아름답던 어린 시절은 사라졌다고 소녀는 절규한다.

1994년 한국에서 출간된 <즐라타의 일기>를 기억하는지?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열한 살 소녀의 눈으로 써낸 일기책은 35개국에서 출판되며 “이런 끔찍한 일은 나치가 유대인을 ‘인종청소’하던 교과서 속 역사 이야기”라고 믿어왔던 이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 일어나는 전쟁의 모습을 알린 것이다.

당시 ‘제2의 안네 프랑크’로 불렸던 일기의 주인공 즐라타가, 전쟁의 참상을 겪은 아이들의 일기를 모아 엮은 <빼앗긴 내일>을 내놨다. 그는 유엔의 도움으로 사라예보를 탈출한 뒤,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평화학을 전공하고 ‘안네 프랑크’의 집 등에서 일하고 있다.


〈빼앗긴 내일〉
〈빼앗긴 내일〉
이 책에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 겪은 전쟁의 이야기가 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유대인 대학살에 이어 베트남전, 보스니아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전쟁까지 백여 년에 걸친 전쟁을 다뤘다. 아이들은 처음엔 전쟁의 열기에 흥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습의 두려움에 떨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슬픔에 시달린다. 전쟁이 길고 깊어질수록 아이들이 직면하는 것은 굶주림이다. 2차 대전 중 태평양 전쟁에서 싱가포르가 일본에 점령된 뒤 유럽인 수용소(창이수용소)에 갇혔던 실라 알란은 벌레를 몰래 익혀 먹는다. 이라크 소녀 호다 타미르 제하드는 물과 식량 부족에 고민하며, 구호물자로 받은 양파 한 부대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슬퍼한다.

전쟁은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 개인에게도 씻을 수 없는 공포의 기억이다. 모험심에 들떠 베트남전에 자원입대한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에드 블랑코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앳된 병사다. ‘베트콩’(베트남 공산주의자)인지 민간인인지 알아낼 겨를도 없이 총을 쏘아야 하는 긴장 속에서 괴로워한다. 한 동료가 땅굴에 적이 있다며 마구 총을 쏘았는데, 알고 보니 지하실에 숨은 아이들과 할머니다.


9·11은 미국인들에게 일상을 공포로 바꿔놓은 경험이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출근하고, 아침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자신의 일터에서 피 흘리며 죽어갈 수 있다는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수년간 분쟁이 끊이지 않아 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에서 그 공포는 오래전부터 일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9·11 이후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일일이 신문 1면에 실었다. 하나하나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빼앗긴 내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 보게 한다. 테러로 불시에 목숨을 잃었건, 극심한 언론 통제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되어버린 이라크전에서 스러졌건 간에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음을 아이들의 눈은 또렷이 말해준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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