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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인이 다른 예술가보다 더 불행한 이유

등록 2008-08-08 19:51수정 2011-12-13 16:40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베이징 주재 <매일신보> 지국장인 백철이 루쉰의 아우이자 저명한 문인이며 북경대학 교수인 저우쭤런(周作人)을 만난 것은 1942년 가을. 저우쭤런 측 전제조건은 기자 아닌 조선 문인이어야 한다는 것. 이에 응한 백철은 비록 저우쭤런이 일군(日軍) 점령지구에 남아 있긴 하지만 마음은 다른 데 있어 보였다고 적었소(<문학자서전>). 이 무렵 저우쭤런은 저 유명한 <중국의 사상문제>(1942.11)를 썼소.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인이지만 여차하면 본래의 사상태도를 하늘에 던져 버리고 야생(野生)을 발휘한다는 이 논문은 제2회 대동아작가대회(1943.10.10)에 참가한 일본인 작가 가타오카 뎃페(片岡鐵兵)의 맹공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소. ‘반동적 노대가’의 발언이라고.

그로부터 곧 광복이 왔소. 저우쭤런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지없이 악명 높은 문화 한간(漢奸)의 대표격으로 재판에 붙여졌소. 저우쭤런의 자기 변명으로 <중국의 사상문제>에 대한 일본 작가의 심증(心證)을 역이용하여 내세웠소. 결과는 징역 14년 형, 죄목은 통적반국(通敵反國). 세상은 이런 태도를 두고 그답지 않다고 했소. 세상은 논리적인 것 이상을 요구했으니까. 왜냐면 그는 문인이었으니까. 그의 생활·예술에 대한 윤리적, 미적인 것에 상처를 입혔다고 보기 때문이오.

이런 중국식 친일파 재판과정에서는 다음 세 가지 유형이 드러났다고 알려져 있소. 침묵으로 일관한 유형. 정치적 이유를 들어 변명하면서도 형을 승복한 경우. 상소한 경우. 상소한 경우에 저우쭤런이 섰소. 상소 이유 속엔 역시 위의 일본 문인의 비판이 중심에 놓였다 하오(기야마 히데오, <북경고주암기>).

꼭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저우쭤런과 비슷한 경우로 혹시 이광수를 들 수 없을까.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육당(최남선)과 더불어 학병 권유에 광분한 이광수가 반민특위(1949.3)에 끌려 나와 재판받는 장면을 방청석의 한 기자는 이렇게 적었소. 일제 때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 재판관의 질문에, 거침없이 죄상을 송두리째 인정하는 최린과는 달리 이렇게 했다 하오.

“내가 친일한 건 표면상 문제입니다. 나는 나대로 그렇지 않을 수가…”라고. 그 기자는 또 덧붙였소. “대 춘원답게 아무 소리 말고 무게를 지켰더라면”이라고(오소백, <세대>, 1966.5).

여기까지 오면 다음과 같은 의혹을 좀처럼 물리치기 어렵소. 한갓 문인에게 논리와 윤리 위에 미적 감각까지 갖추라고 요구함이란 너무 가혹함일까. 그만큼 문인을 기린 탓이었을까. 히틀러에게 봉사한 대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의 전후 재판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웃 나라 모 정치학자의 발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오. 나치 음악, 공산주의적 음악, 민족주의적 음악이 따로 있기 어려우나 언어가 지닌 사상성 탓에 문학은 썩 불리하다는 것(마루야마 마사오, <푸르트뱅글러를 둘러싼 좌담회>). 당초 그는 십자가 하나를 더 짊어졌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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