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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요산의 우리말과 야생초 사랑

등록 2009-01-08 18:22수정 2011-12-13 16:37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백 년 전 육당께서 총명한 소년들을 내몬 항도 부산. “돌아오라, 그리운 형제여”(조용필)라는 울림이 메아리치는 곳. 지난 세밑(2008.12.13), 이곳 태생 소년의 탄생 백 주년 잔치가 있었소. 소년의 이름은 김정한. 호는 요산(樂山). “군자는 산을 즐긴다”(君子樂山)는 그 뜻이었을까. 술을 사라고 “요산(樂山), 요산(樂山)” 하고 벗들이 꾈 때 모른 척하면 친구들 왈 “낙산(樂山), 낙산(樂山)”이라고 했고, 그래도 모른 척하노라면 이번에는 성난 목소리로 “악산(樂山), 악산(樂山)” 한다고 짓궂게 웃던 그 요산의 생가(금정구 남산동)엘 갔소.

언덕 위 훤칠한 터에 기와집 한 채. 유독 긴 툇마루가 윤동주 생가(용정 교외)를 연상시켰소. 그 옆에 요산 문학관이 솟아 있었소. 3층으로 된 모던한 건축물. 낙동강 파수꾼과 모더니즘의 만남이라 할까. 이 또한 구경거리라 할 만하오. 진짜 구경거리는 물론 따로 있었소. 자료실에 보관된 미발표 원고들이 그 하나. <새양지>(1936)를 비롯해 <유산>(1964), <세월>(1966), <잃어버린 산소>(?), <낙동강>(?) 등의 작품들은 아마도 문학적 완성도에 미달해서 혹은 모종의 이유로 그대로 두었을 터이오. 전집이 나와야 할 이유이기도 하오.

두 번째는, 놀라움이거니와, 상자마다 가득 찬 카드 더미가 그것. 우리말 어휘 사전이 아니겠는가. 어째서 요산은 스스로 어휘 사전을 만들어야 했을까. 두말하면 잔소리. 문학이란 말의 구축물이기에. 시적이거나 미문 혹은 세련성에 앞서 정확성이 웃길에 놓인다고 본 증거. 가령 “간대로 안 될 끼다”로 말해지는 부사 ‘간대로’가 있소. ‘함부로’, ‘공연히’, ‘망령되이’ 등을 뜻하는 순우리말. 요산은 인간다움의 정황 묘사의 정확성을 위해 작품 곳곳에 이 말을 구사했소.

이와 버금가는 세 번째가 또 있었소. 정밀히 그린 야생초와 그 해설의 노트들이 그것. 누가 우리 야생화를 두고 이름 모를 꽃이라 하는가. 또 이름 모를 새라 하는가. 어림도 없는 일. 그러고 보면 이를 어찌 감히 구경거리라 하겠소. 실상은 엄숙한 문학 정신의 영역이 아닐 것인가.

내친김에 요산이 근무했던 부산대학교로 향했소. 거기 한국문학회를 비롯해 네 학술단체가 공동 주최한 요산 탄생 백 주년 기념 학술 발표대회가 있었으니까.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해서일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겠는가. 구경만 하고 앉아 있지 말고 또 잘만 하면 여비도 조금 보태줄 테니 요산문학론을 한번 펼쳐 보이라고.

떠듬거리며 이렇게 말했소. 요산문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전기의 대표작은 <추산당과 곁사람들>(1940)이고 후자의 그것은 <수라도>(1969)라고. 또 전후기를 관통해서 흐르는 힘센 물줄기는 다음 두 가지. 하나는 불교. 다른 하나는 나병. 이 둘은 불교 그 자체도 나병 그 자체도 아니고, 이 땅 민중의 표상이라는 것. 자신 있게 제법 큰 소리로 말을 마치자 금정산정(金井山頂)에 해가 지고 있었소. 저녁도 먹고 가라는 당부를 물리치고 부산역으로 향했소. 기차로 왔으니 기차로 갈 수밖에.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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