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일 두 작가 전율시킨 ‘멕시코 체험’

등록 2009-02-05 17:43수정 2011-12-13 16:39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소설에 대한 이론서가 소설만큼 감동적인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소. 황금시대 꿈꾸기라는 황당무계한 망상과 함께 가는 것이 소설이라 우기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1916)이 그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해놓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방법>(1998)도 그러하오. “나의 작가로서의 뜻하는 바가 동시대의 전체를 표현하고자 함에 있지만 이 십수 년 동안 내 가정에 있었던 기형을 떠나서는 어떤 소설도 쓸 수 없었다.” 장남이 날 때부터 기형이었던 것.

물론 씨의 총명함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게 했겠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보조선이 있었소. 장남의 기형성의 극복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멕시코 체험. 어떤 경로로 장남이 작곡가로 변신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헤아리기 어려우나 멕시코 체험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오.

씨가 멕시코에 머문 것은 만 20주. 이 기간을 스스로 모라토리엄(유예기간)이라 불렀거니와, 여기서 씨는 멕시코 예술의 기막힌 기형성에 압도당했다 하오. 오랜 기간 악명 높은 스페인 식민지로서의 박해에서 비롯해, 주변으로 전락한 원주민의 역사란 중심적·정상적인 것에서 한없이 벗어난 기형 천지였던 것. 기형적 인물의 탄생과 죽음으로 점철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곧 그 사회의 구조적 열성(劣性)의 표현으로 일관된 예술이란 무엇인가. 멕시코 사회의 총체성의 표현이란 이 기형적 열성의 역동성으로 인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잠깐, 그야 양가성 이론에 입각한 문화인류학의 한갓 상식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오.

그러나 오에 씨에게 중요한 것은 집안의 장남의 구조적 열성이었던 것. 씨의 대작 <타오르는 푸른 나무>(제1부 <구세주의 수난>, 한국어판 1995)에서 씨는 이렇게 적었소. “이 작품을 두고 북아시아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한 김지하 씨의 표현은 제 문학의 중심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라고.

대체 멕시코 체험이란 무엇인가. <당신들의 천국>의 작가 이청준 씨의 멕시코 방문은 2001년에 이루어졌소. 씨는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 해답이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편 <신화를 삼킨 섬>(2003)에 어김없이 들어 있소. 씨가 본 것은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 전시실. 거기에는 갖가지 상형문자가 새겨진 제단 중앙부에 제물로 지목된 사람의 살아 있는 심장을 꺼내 바치는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지 않겠는가. 주위에 전시되어 있는 날카로운 적출 기구와 함께. 전율을 느낄 수밖에. 요컨대 거기엔 사회질서를 합리화한 신화가 실물로 전시되어 있었던 것. 사회질서란 이 전율하는 사실 위에 가까스로 이루어졌던 것. 40년간의 자기 소설을 정리하는 마당에서 이청준 씨는 자기 소설이 이런 신화를 다루지 못했음에 생각이 미쳤다 하오. 신화를 음미하기엔 당면한 시대에 너무 조급했으니까. 신화 없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조금은 엷은 소설이라는 판단에 이르지 않았을까. <당신들의 천국>을 제주도 4·3 사건의 신화로 끌고 갈 수밖에.

이렇게 본다면 한·일 두 작가의 멕시코 체험이란 서로 다를지라도 생산적이었다고 할 수 없을까. 예술에서는 작가의 체험이 어떤 사상이나 이념보다 소중한 법이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