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작품에 <어머니가 있는 유월의 대화>(1965)가 있소. 모성애를 주제로 한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소품. (A) 아내를 두고 피난길에 오른 부자 얘기. (B) 집 나간 어미를 가진 병사 얘기. (C) 임진강 도강에서 일행을 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어미 얘기.
모성애의 절대성이랄까, 맹목성은 모두가 아는 일. 그런데 어째서 이 모성애의 절대성을 하필 6·25를 통해서야 표현 가능했을까. 이런 물음이 솟아남을 물리치기 어렵소. 6·25를 통해 그 절대성을 새삼 확인함으로써 6·25라는 지역적, 민족적 비극을 인간의 보편성에로 이끌어 올리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혹은 이를 통해 6·25의 비극성을 한층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 전자라면 모성애의 절대성의 인식에 기여한 것이 될 법하오. 후자라면 반전사상으로도 튕겨나갈 성질의 것일 수도 있을 법하오.
독자층의 이러한 의문에 대해 작가는 다만 침묵하리라 짐작되오. 어느 쪽도 아니지만 어느 쪽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는 하나, 작가에겐 창작에 있어서의 마음의 흐름이란 것이 있는 법. 이 점에서 보면 전자 쪽에 기울어져 있지 않았을까. 어째서? 만년의 작가는 그가 영향 받은 작가의 하나로 체호프를 들고, 특히 <귀여운 여인>을 표 나게 내세운 바 있소(<신동아>, 1966.4).
주인공 올렌가는 누구에게도 귀염 받는 여인이었소. 첫 남편은 극장 주인. 그녀는 남편과 그 직업을 사랑했소. 그 남편이 죽자 두 번째 결혼을 하지요. 목재상이었소. 꼭 마찬가지로 그녀는 남편과 그 직업을 사랑했소. 이번에도 사고로 남편을 잃자, 세 번째는 유부남 수의사를 사랑했고 그 아들에다 온갖 정성을 쏟았소.
체호프는 이런 줏대 없는 여인에다 ‘귀여운 여인’이란 제목을 달았소.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그게 진짜 귀여운 여인이다!”라고 격찬해 마지않았소. 어째서? 톨스토이는 구약 <민수기>(22~23장)를 막바로 내세웠소. 발락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로 나선 발람이 정작 나아가서는 저도 모르게 저주 대신 축복을 해버린 사건이 그것. 발람이 타고 간 나귀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 판세인데도, 발람은 저주 대신 축복을 해버렸던 것. 그 나귀보다 어리석은 발람이 바로 체호프라는 것. 여성해방운동이 판을 치는 마당에 이와 정반대의 여인을 그렸다는 것. 곧 맹목적인 여성의 ‘자연성’ 말이외다. 이렇게 말한 톨스토이는 자기의 체험담을 내세웠소.
연병장에서 말을 조련할 때 저쪽 구석에서 어떤 부인이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하오. 부인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한다는 것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말을 몰아 결국은 충돌하고 말았다는 것. 자기와는 정반대였지만, 체호프도 이와 꼭 같았다고. 체호프는 <귀여운 여인>을 쓰러뜨리고자 마음먹고서 온 힘을 모아 노력했는데, 저도 모르게 거꾸로 축복한 결과에 이르렀다고. 문학에서는, 그러고 보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소중한 것이 따로 있는 법. 저 마음의 흐름 말이외다.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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