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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구보와 이상의 ‘명품 문학’ 자각서 싹튼 ‘문학진품’일까

등록 2009-08-06 22:42수정 2011-12-13 16:31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탄생 백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청계천에서 만난 사람, 구보 박태원’의 유물 전시회가 청계천 문화관에서 열렸소(6·16~7·5). 개막식 날, 입구의 첫 번째 화환이 눈에 띄었소. <한국방송>(KBS) ‘진품명품’ 감정위원들의 것. 유족 측 해명은 이러했소. ‘진품명품’에 구보의 결혼사진첩을 제출했는바(5월 24일 방영), 평가 금액이 놀랄 만큼 높았다는 것.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은 이러했소. 그것이 진품임엔 틀림없겠지만, 명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가 그것.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소. 정작 이 물건을 명품급에 든다고 감정한 것은 그대가 아니었던가라고. 바로 <날개>(1936)의 작가 이상의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이 결혼사진첩에 들어 있는 “일체 면회거절 반대”를 쓴 기명자 ‘以上’(이상)이 바로 이상(李箱)이라는 것. “결혼은 즉 만화에 틀림없고…” 운운의 4행시가 바로 명품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것. 기자들 질문에 이렇게 내가 단정적으로 말한 것은 대체 어떤 근거에서였던가.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오. 이상의 육필에 일치되며 구인회(1933) 동인이며 이상의 다방 ‘제비’의 단골이 구보였다는 것 등의 정황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두 사람이 함께 고현학(考現學)의 제일 날쌘 앞잡이였다는 점. 후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을 수 없소. 그것도 조금은 거창하게.

<날개>와 <천변풍경>(1936)이 출현했을 때 당시의 문단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소. 도무지 종래의 소설 문법과 너무도 달랐으니까. 왈 난해한 작품. 이를 제대로 평가한 것이 최재서의 고명한 평론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1936). <천변풍경>이 확대라면 심화는 <날개>. 이 순간 이 나라 문학은 그 넓이와 깊이가 동시에 새로워졌소. 바야흐로 눈부신 고현학의 출현 장면이오. 잠깐! 그래봤자 선진국에서는 이런 고현학이란 한갓 일상화된 상식이 아니었던가. 신심리주의가 휩쓸던 일본 문단에서는 여름의 맥고모자만큼 흔하다고 지적된 바도 있었소(김문집, <비평문학>).

이러한 후진국 콤플렉스를 물리칠 방도는 무엇일까. 20세기 최고의 소설 <율리시스>(1922)의 작가 조이스의 위상에 주목해보면 어떠할까. 식민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하루를 다룬 <율리시스>는 식민지적 현실의 형언할 수 없는 빈곤을, 대영제국이 이룩한 최고의 문체와 대응시킨 것. 이로써 종주국과 식민지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글턴, <위대한 굶주린 자>). 이러한 논법에 따른다면, 식민지 경성의 형언할 수 없는 빈곤을 제국 일본이 이룩한 최고의 문체에 대응시킨 것. 이상이 편집한 구인회 동인지에 실린, 도쿄를 무대로 한 구보의 <방란장 주인>(1936). 단 한 문장으로 소설 한 자루를 써낸 문체의 힘이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이 경우 구보나 이상이 과연 조이스 모양 자각적이었던가의 문제가 남게 되오. 그러고 보니 내년에 백주년을 맞는 이상에게 다시 이 과제를 넘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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