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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09 우리 소설 ‘무소의 뿔’ 같은 작가들

등록 2009-12-03 20:39수정 2011-12-13 16:27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81학번 공지영씨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는 진지한 작품이 그러하듯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오. 여대생 셋이 있었소. 혜완, 경혜, 영선이 그들. 헤엄치기의 기술도, 연습도 없이 삶의 물속에 뛰어든 이 삼총사의 10년에 걸친 삶의 현장이 펼쳐졌소. 초점 화자인 혜완은 이혼했고, 경혜는 결혼해 그럭저럭 살아가며, 영선은 자살했소. 이제라도 혼자서 갈 수 있는 유자격자는 혜완인 셈. 그녀는 과연 무소처럼 혼자서 갈 수 있을까. 없소. “저는 어쩌면 좋으냐”라는 절망적인 물음에 은퇴하여 시골에서 삶을 낚시질하는 늙은 아비가 끝내는 연민의 정조차 보내지 않았음이 그 증거. 이 대목은 썩 감동적이오. 세속적 삶이란 무소의 뿔일 수 없음에서 그 감동이 오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오리오.

시적 표현으로 된 초기 불경의 하나인 <수타니파타>가 있소. 그 속엔 이런 대목이 있소.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도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석지현 역) 수행자의 길이란 오직 하나. 어찌 세속적인 길과 양립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소설질(이청준의 용어)하기란 무엇인가. 세속적인 길인가, 수행자의 길인가. 이 물음에 망설임 없이 응해 오는 작가에 배수아씨가 있소. 씨는 말하오. 소설질하기가 수행의 길인지 세속의 길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뿐이다, 라고. 독일을 거점으로 하여 카프카 도당 되기에 골몰하기(<올빼미의 없음>), 숨이 찰 만큼 긴 문장을 늘어놓기(<무종>), 독자들이 성가셔하든, 헛갈리든, 읽든 말든 오불관언. 이런 투의 글쓰기를 두고 우리 소설계의 수타니파타 제1유형이라 하면 어떠할까. 왜냐면 그렇게 함으로써 소금장수 식의 우리 소설계의 취약점이 어떤 수준에서 극복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니까.

두 번째 유형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씨를 든다면 어떠할까. 씨가 주목하는 곳은 소통이라는 과제. 우리끼리의 소통이기에 앞서 외국인과의 소통이기에 유별날 수밖에. 어떻게 하면 한국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동시대의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가. 정확히는 외국어를 모르면서도 소통할 수 있을까를 소설쓰기를 통해 모색하기가 그것. 세계인의 소설 문법에 접근하기인데, 그러자니 한국어가 문제였던 것. 정서적 운용에 기운 한국어로는 산문적 글쓰기인 소설엔 부적절해 보였으니까. 소설 밀도를 높이면, 세계인과의 소통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우리 독자들이 성가셔하거나 외면할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눈치를 살필 수밖에요. 흘깃흘깃 뒤돌아보는 승냥이처럼 망설이며 혼자서 갈 수밖에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승냥이처럼 흘깃흘깃 혼자서 가라’의 옆에, 또 아래에 놓이는 유형은 어떠할까. 세 살 적부터 글쓰기에 눈떴다는 신진 작가 황정은씨는 어떠할까. 내 이름은 파씨. 어째서 파씨냐고 묻는다면 파씨니까. 더는 의미가 없다는 글쓰기가 여기 있소이다. 맨 첫 기억이란 세 살 적 파도 소리였으니까(<파씨의 입문>). 인생의 첫 기억과 글쓰기가 분리 불가능한 곳. 인간 형상의 로봇으로 태어났으니까 말할 수 없이 민첩할 수밖에. 생존키 위해 필사적으로 선인장 꽃 속의 꿀을 탐하는 벌새의 날갯짓처럼 갈 수밖에. 무소의 뿔, 승냥이의 의심, 벌새의 날갯짓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혼자서 가기라는 것. 글쓰기란 골방에서 혼자 하는 것이니까. 누구의 충고도 받는 바 없기에 누구에게 조언도 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이 또한 수행자의 길이라 할 수 없을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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