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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상 탄생 백주년이 특별한 이유

등록 2010-02-04 19:14수정 2011-12-13 16:26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들어라, 소년들이여. 그대들은 담이 큰지라 진시황도 나폴레옹도 우습게 보아야 한다. 그대들은 순정한 이라 세상의 온갖 더러움 없도다. 이 두 불패의 무기로 지체 없이 바다로 가라. <무정>(1917)의 주인공은 약혼자와 더불어 망설임도 없이 태평양 건너 시카고 대학으로 갔소. 아무도 그들에게 수심(水深)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수심을 재지 않으면 안 되었소. 그것을 재기에 그들의 날개는 너무 얇고 가늘었소. 익사하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칠 수밖에요.

그런 몸짓의 하나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씨여!”(정지용, <해협의 오후 두 시>, 1933)가 있소. 자기 몸을 조국 삼기. 몸 전체를 감각으로 무장하기,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온갖 것에 조국만큼의 무게를 둘 수밖에요. “해발 오천 피트 권운층 위에/ 그싯는 성냥불!”(<비로봉>)이 재롱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서 오오. 이 순간 소년은 청년으로 될 수밖에요.

또다른 청년화 현상은 어떠했을까.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동경/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의 슬픈 고향의 한 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임화, <해협의 로맨티시즘>, 1938). 소년은 어느새 청년으로 될 수밖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식민지 수도 서울 통인동의 토박이 소년이 있었다면 어떠할까. 그는 보지 않으면 안 되었소.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가 성곽을 뚫고 들어옴을. 저 완제품 기관차가 경부선으로 달려온 것과 흡사한 것. 바로 식민지 수탈용 고등공업의 교육 말이외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무장한 이 소년은 대번에 <오감도>(1934), <날개>(1936)를 썼소. 예술도, 학문도,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일 수 있다면 어째 바다까지 갈까 보냐. 육당의 유혹이 이 소년에겐 통하지 않았소. 바다가 소년에게로 다가갔으니까. 보라, 이 소년의 질주를. 골목은 막다른 골목이오. 아니, 뚫린 골목이라도 상관없소. 유클리드 기하학의 제5공리를 아시는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립 근거를 아시는가.

딱하게도 세상은 이 소년의 청년화 현상을 용납하지 않았소. 이천 편의 <오감도>는 15편으로 중단될 수밖에요. 그 순간 소년은 결심했소. 제국의 수도 도쿄에 가야 한다는 것을. 소년은 갓 결혼한 아내도 물리치고, 현해탄을 건넜소.

제국의 수도 한복판엔 움직일 수 없는 진리가 있었던가. 그가 본 것은 모조품이 아니겠는가. 활동 사진 세트 같은 치사스런 도시. “내달 중 도로 돌아갈까 하오”라고 선배 김기림에게 고백할 수밖에(<사신 7>). 바로 이 순간 소년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가를 직감했소. 귀환불능의 역리(逆理)가 그것.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에 갈 수도 올 수도 없다는 것. 이로써 그는 끝내 소년의 반열에 머물 수밖에요. 청년화 현상이 부재하는 이 소년의 이름은 이상 김해경. 탄생 백 주년에 제일 알맞은 이유이오. 영원한 소년배였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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