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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현 그리고 4·19와 말라르메

등록 2010-04-01 19:18수정 2011-12-13 16:23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기이한 체험이라 전제한 고 김현씨는 1988년 이렇게 말했소.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적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살에 멈춰 있다”라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복창했것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라고. 대체 4·19란 무엇이기에 한 평론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4·19란, (1) 2·28의 대구사건, (2) 3·15 마산사건, (3) 고대생 데모, (4) 전국적인 4·19, (5) 4·26 이승만 대통령 하야 등을 가리키는, 이른바 그림자가 없는 역사적 개념이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라는 이념이 그 속에 비로소 숨 쉬고 있었으니까. 유아론(唯我論)에 빠져 자기만 아는 시를 써 제치던 김수영, 김종삼, 김춘수 등 3김씨에 4·19가 던진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소. 유아론을 버리고 각기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야 했음이 그 증거. 제일 먼저 몸 빠른 쪽이 김수영. ‘의미의 시’ 탄생이 그것. 두 번째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읊은 <북치는 소년>의 김종삼. 이미지 묘사에 매달렸던 김춘수는 어떠했던가. 묘사를 버리고 <인동잎>으로 나갔던 것. 그가 닿은 곳은 <하늘수박>.

<하늘수박>이란 새삼 무엇이뇨. 주관·객관의 관계 또는 주어·술어의 인식론에서 빚어진 <꽃>의 세계를 훨씬 벗어난 경지. 인식론 이전의 세계에로 소급하기였던 것. 이는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선 것. 이 시선에서 보면 대표작으로 말해지는 <꽃>이란 여여(如如)치 않은 한갓 조화(造花)일 수밖에. 한갓 인식론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 3김씨에 대한 씨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 김수영에 대한 관심이 김현씨에겐 제일 엷었소. 그것도 김수영이 “언어로만 자유가 열린다”라고 했을 때뿐. 주의 깊은 독자라면 씨의 마음의 흐름은 씨가 그토록 열심히 또 많이 쓴, ‘무의미의 시’의 대명사격인 <처용단장>의 김춘수 쪽에 닿아 있지 않았음도 눈치챘을 터. 씨의 마음의 흐름이 닿은 곳은 <북치는 소년> 쪽. 김종삼과 더불어 씨는 북을 치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그랬을까.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지오. 북소리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사원의 파이프오르간을 치는 세사르 프랑크의 리듬이 거기 있었으니까. 말라르메의 본가에 들러 그의 곰방대도 둘이서 함께 만졌으니까.

불문학도인 씨에게 말라르메가 속삭였소. 아가야, 시란 언어로 사유하는 부재(不在)란다. 그것은 울림이란다. 의미 따위에 집착하는 영시와는 다르단다라고. 이런 스승과 수제자의 관계가 4·19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있다라고 힘차게 씨가 말했소. “나는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고 있었다”라고. “18살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4·19 적에 씨가 가졌던, 변하지 않는다는 그 확신이란 무엇인가. 왈 “리듬에 대한 집착, 이미지에 대한 편향, 타인의 사유의 뿌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라고. 맨 앞에 놓인 것이 리듬. 리듬이란 새삼 무엇이뇨. 울림의 시학. 암시의 시학. 말라르메. 그것을 싸잡아 씨는 세속적으로 4·19라 불렀던 것. 씨는 토종 한국인이었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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