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불기 2549년 부처님 오신 날 오후 조계사에 갔소. 긴 줄을 서서 참배하고 나오자, 놀라워라, 마당 가득 노래 한마당. 더욱 놀라운 것은 마이크를 쥔 가수의 손짓에 따라 사부대중이 손뼉 치며 목 놓아 합창하고 있지 않겠소. “굳세어라! 금순아!”라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바로 현인 선생의 그 노래. 더욱 놀란 것은 따로 있소. 부처님께서 저 노래를 좋아하심을 어째서 저들은 대번에 알아차렸을까.
귀가하여 밤늦게까지 소설 한 편을 읽었소. 김동리의 <흥남 철수>(1955)가 그것.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 및 유엔군의 후퇴가 결정되어 수도 서울 시민 대피령과 흥남 철수가 동시에 발표된 것은 1950년 12월24일. 이 흥남 교두보 작전은 한·미 장병 10만2천명, 민간인 9만8천명을 탈출시킨 것으로, 전세계가 주시하는 자유 전선의 아슬아슬한 건널목이었던 것.
바로 이 결정적 장면에 창작의 모티프를 둔 점이야말로 대가 김동리의 이른바 착상의 패기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착상의 패기만으로 작품이 될 이치가 없는 법.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종군시인 철의 눈으로 윤 노인과 두 딸의 비극적 장면을 그려 냈소. 큰딸은 간질병 환자로 설정됐소. 가까스로 승선표를 얻어낸 철이 윤 노인과 두 딸을 함께 승선시키려는 찰나, 큰딸의 발작이 일어났소. 철이 큰딸을 들쳐 업었을 때, 지친 윤 노인은 바다에 추락했고 작은딸은 아비를 구하려 바다에 뛰어들었소. 그 순간 배의 문이 닫혔소. 큰딸만이 구출됨으로써 이 작품의 휴머니즘은 무겁게 닫히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피난민 후송선의 명칭이오. 작가는 아무런 주석도 없이 이렇게 세 번 배의 명칭을 적었소. “엘·에스·티”라고.
당시로서는 엘·에스·티(탱크를 위한 상륙용 선박, Landing Ship for Tanks)가 웬만한 군사용어와 함께 상식화되지 않았을까 싶소. 그렇지만 그것이 이 나라 분단문학의 문학사적 문맥 속에서 디엔에이(DNA)로 각인되었음은 다음 두 걸출한 작가의 운명으로 인해서이오.
<광장>(1960)의 작가 최인훈과 <판문점>(1961)의 이호철이 그들이오. 원산 고등중학 1년생 최인훈이 가족과 함께 흥남부두에서 엘·에스·티를 탄 것은 1950년 12월24일 이후로 추정되오. 이 엘·에스·티 체험이 최인훈 문학의 원점이었다면, 이와 같은 의미에서 또 한 사람의 작가로 이호철을 꼽지 않을 수 없소. 원산 고등중학 3년생인 19세의 이호철이 엘·에스·티를 타고 단신으로 부산 제1부두에 닿은 것은 1950년 12월9일 아침. 이때 주목되는 것은 ‘단신’이라는 점이 아닐 수 없소. 체호프 전집과 ‘단신’ 월남의 이호철로 그의 삶과 문학은 가늠되오.
“12월 초 단신으로 엘에스티를 타고 월남함”(연보)이라 그는 표 나게 적었소. 이호철에게 북쪽의 부모란 항시 변치 않는 북두칠성이 아니었을까. 그의 머리는 늘 그쪽을 향할 수밖에. 이것이 밤의 사상이오. 데뷔작 <탈향>(1955)에서 보듯 그는 남쪽에 뿌리내리기에 필사적이었을 수밖에. 이것이 대낮의 논리. 분단문학의 참뜻이 이 속에 있소. 유형, 또는 망명의 문학으로 말해지는 최인훈과의 변별점도 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