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지난 7월16, 17일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한일 문학교류의 현재, 과거, 미래’라는 명목하에 열린 바 있소. 이상 문학회, 무사시대학 총합연구소, 연세대 비케이(BK)21 사업단 등이 참가하고 재정지원은 한일문화교류기금. 제목 그대로 이상 문학을 중심점에 놓고 한일 문학교류의 가능성을 점검함이었소. 어째서 이상 문학이 한일 문학교류의 현재, 과거, 미래를 재는 측도였을까. 이 물음 속에 천금의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을까.
식민지 수탈용으로 세운 경성고등공업 건축과에서 이상이 배운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동시적 성립이었소. ‘평행선은 절대로 교차하지 않는다’와 ‘평행선은 어느 무한점에서는 교차한다’는 두 명제의 동시적 성립이야말로 토박이 아이에겐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동시에 이 아이를 공포에 몰아넣었으니까. 이 공포의 정체는 또 20세기적인 것이자 동시에 21세기의 것이 아닐 수 없소. 현재적이자 미래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오오.
이 마음 가난한 아이에게 저러한 공포를 직접 가르친 당사자는 누구였던가. 이 점 또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소.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은 그것이 공기처럼 투명한 존재였기 때문이오. 곧 근대 일본의 ‘국어’가 그것. 그것은 자연 언어인 일본어가 아니라 번역을 통해 일본 근대국가가 창출해낸 ‘국어’였소. 이 아이에겐 고도의 추상어, 수식(數式)과 흡사한 것. 그 ‘국어’를 통해 이 식민지 아이는 글쓰기에 나아갔소. <오감도>를 비롯 그의 글쓰기는 당초부터 일어로 이루어졌소. 미발표 육필유고가 이를 증거하오.
일본의 ‘국어’가 일본의 자연어가 아니듯 이상이 쓴 한국어도 자연어로서의 한국어가 아니기는 마찬가지. <산촌기행>이 이를 증거하오. 요컨대 이 아이는 당초 <서방의 사람>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언어로 글쓰기에 나아갔소. 그러니까 이 아이는 공포의 심연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소. 그가 현해탄을 건넌 것은 <날개>를 발표한 1936년 가을이었소. 제국의 수도 도쿄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실로 빈 강정이었소. 근대국어가 아니라 현지어인 일본어, 자연어가 범람하는 곳.
위기에 놓인 사람 일반이 겪는 일이 그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소. 살아온 지난날의 되돌아봄이 그것.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종생기>를 썼소. 그동안 단편적으로 쓴 것의 집합체. 두 달 만에 쓴 것이 <권태>였소. 한국어로 쓴 가장 기품 있는 글 말이외다. 이 순간부터 이상 문학은 일본의 ‘국어’와 결별하고, 한국문학 범주로 넘어왔소. 만일 이 도쿄 체험을 통렬히 소화했더라면 필시 그의 문학은 새 지평이 열렸을 터. 한국의 국어로 쓰는 문학 말이외다. 제국의 수도 도쿄는, 이 아이를 포용할 수 없었소. 7개월 만에 이 아이는 레몬을 혹은 멜론의 향기를 떠올리며 숨을 거두었소.
사후 73년 만에 도쿄는 이 아이를 어떻게 포용할까 겸허히 궁리하고 있소. 그 ‘어떻게’ 속엔 일본의 국어와 한국의 국어 위에 군림하는 보편어의 위상이 있소. 이 보편어야말로 제3의 공포가 아닐 것인가. 이상의 날개가 다시 한번 날아야 할 이유이오.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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