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이상의 날개, 도쿄에서 다시 한번 날다

등록 2010-08-19 20:01수정 2011-12-13 16:17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지난 7월16, 17일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한일 문학교류의 현재, 과거, 미래’라는 명목하에 열린 바 있소. 이상 문학회, 무사시대학 총합연구소, 연세대 비케이(BK)21 사업단 등이 참가하고 재정지원은 한일문화교류기금. 제목 그대로 이상 문학을 중심점에 놓고 한일 문학교류의 가능성을 점검함이었소. 어째서 이상 문학이 한일 문학교류의 현재, 과거, 미래를 재는 측도였을까. 이 물음 속에 천금의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을까.

식민지 수탈용으로 세운 경성고등공업 건축과에서 이상이 배운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동시적 성립이었소. ‘평행선은 절대로 교차하지 않는다’와 ‘평행선은 어느 무한점에서는 교차한다’는 두 명제의 동시적 성립이야말로 토박이 아이에겐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동시에 이 아이를 공포에 몰아넣었으니까. 이 공포의 정체는 또 20세기적인 것이자 동시에 21세기의 것이 아닐 수 없소. 현재적이자 미래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오오.

이 마음 가난한 아이에게 저러한 공포를 직접 가르친 당사자는 누구였던가. 이 점 또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소.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은 그것이 공기처럼 투명한 존재였기 때문이오. 곧 근대 일본의 ‘국어’가 그것. 그것은 자연 언어인 일본어가 아니라 번역을 통해 일본 근대국가가 창출해낸 ‘국어’였소. 이 아이에겐 고도의 추상어, 수식(數式)과 흡사한 것. 그 ‘국어’를 통해 이 식민지 아이는 글쓰기에 나아갔소. <오감도>를 비롯 그의 글쓰기는 당초부터 일어로 이루어졌소. 미발표 육필유고가 이를 증거하오.

일본의 ‘국어’가 일본의 자연어가 아니듯 이상이 쓴 한국어도 자연어로서의 한국어가 아니기는 마찬가지. <산촌기행>이 이를 증거하오. 요컨대 이 아이는 당초 <서방의 사람>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언어로 글쓰기에 나아갔소. 그러니까 이 아이는 공포의 심연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소. 그가 현해탄을 건넌 것은 <날개>를 발표한 1936년 가을이었소. 제국의 수도 도쿄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실로 빈 강정이었소. 근대국어가 아니라 현지어인 일본어, 자연어가 범람하는 곳.

위기에 놓인 사람 일반이 겪는 일이 그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소. 살아온 지난날의 되돌아봄이 그것.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종생기>를 썼소. 그동안 단편적으로 쓴 것의 집합체. 두 달 만에 쓴 것이 <권태>였소. 한국어로 쓴 가장 기품 있는 글 말이외다. 이 순간부터 이상 문학은 일본의 ‘국어’와 결별하고, 한국문학 범주로 넘어왔소. 만일 이 도쿄 체험을 통렬히 소화했더라면 필시 그의 문학은 새 지평이 열렸을 터. 한국의 국어로 쓰는 문학 말이외다. 제국의 수도 도쿄는, 이 아이를 포용할 수 없었소. 7개월 만에 이 아이는 레몬을 혹은 멜론의 향기를 떠올리며 숨을 거두었소.

사후 73년 만에 도쿄는 이 아이를 어떻게 포용할까 겸허히 궁리하고 있소. 그 ‘어떻게’ 속엔 일본의 국어와 한국의 국어 위에 군림하는 보편어의 위상이 있소. 이 보편어야말로 제3의 공포가 아닐 것인가. 이상의 날개가 다시 한번 날아야 할 이유이오.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