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신춘문예 소설의 풍경
올해 신춘문예 소설엔 애완동물 두 종류와 곤충 두 종류가 등장하오. 애완동물 하나는 거북(<한국일보>). 손바닥 크기임에도 등껍질엔 육각 귀갑무늬 뚜렷한 놈. 왜 이놈을 샀는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동공 때문. 놈을 냉장고에, 또 수조에 넣어 어두운 곳에 두었더니 동공이 하얀 점막으로 탁해지지 않겠는가. 혼자만의 방에서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인 주인공은 실내낚시 가는 일 외에는 냉장고처럼 폐쇄 공간에 갇혀 있소. ‘나’가 흰 점막으로 동공 흐린 거북 신세 되기란 시간문제.
이번엔 곱슬거리는 흰 털에 15㎏의 몸을 가진 수놈 푸들이 등장하오(<조선일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직장에 다니는 선배 집에 가까스로 기식하는 고아 여대생에겐 그 선배의 애완견이 바로 골칫거리. 온갖 지혜를 짜내어 이놈의 행패를 막아내야 할 판. 선배가 없을 때 놈을 김장용 밀폐통에 가두고 냉장실에 처넣었군요. 한참 후 냉장고 문을 여니 놈이 아직 살아 있지 않겠는가.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 대학을 때려치우기가 그것. 푸들은,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며 대학을 다니고자 하는 주인공의 분신이었던 셈. 그러고 보니 냉장고, 폐쇄 공간, 애완동물의 삼각형 도식이 선명합니다 그려.
한편 두 종류의 곤충은 어떠할까. 어학 연수차 프랑스에 온 지 수개월째에 접어든, 결혼 3년째이고 별거중인 여인이 있소(<경향신문>). 관광인지 도피인지 불명인 이 여인이 묵는 기숙사엔 바퀴벌레가 출몰하오. 60년대의 가난 속에서 익숙해진 그 바퀴벌레가 21세기 하고도 프랑스 기숙사에 출몰하다니.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또 얼마나 저질이었으면 이런 곳에 머물렀을까. 불을 끄기만 하면 바퀴벌레가 몸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환각. 이 환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딱 한 가지. 말하기. 누군가에게 말하기. 거짓말이든 참말이든 말하기. 왜냐면 그 누구도 상대방 말을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곤충의 또 하나는 나비. 참산뱀눈나비를 아시는가. 부드러운 갈색과 어두운 고동색 날개를 가진, 유달리 시맥(힘줄)이 도드라진 귀족. 이놈에게 눈독을 들인 미술학도가 있었소(<문화일보>). 그 굉장한 날개를 떼어내 작품 만들기. 그래야만 미학이 이루어진다면 무릅쓸 수밖에. 악마와도 타협해야 할 판이니까. 과연 전시장에서 여사여사한 이유로 속인들은 그 잔인함에 아연해했소. 왜냐면 완성된 작품에서 본 것은 날개가 아니라 무수한 시체였으니까. 작업실에 돌아온 이 미학도는 작업대 위의 통에서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날개 잘린 나비들과 마주치게 되오. 날개 잃은 나비의 짝짓기 행위.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1973), 비단벌레의 등날개로 장식한 말안장 앞뒤가리개를 아시는가. 비단벌레의 초록빛 금색 등껍질을 떼어내 장식으로 사용했던 것. 심지어 불상을 담아두는 두지에도 사용했던 것(일본 호류지의 옥충주자(玉蟲廚子)가 그것). 비단벌레도 날개 없이 짝짓기를 했을까. 도대체 미의 존재방식이란 생명의 그것과 역방향에 서는 것일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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