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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완서 선생이 떠난 자리

등록 2011-01-28 20:25수정 2011-08-05 22:44

최재봉 기자
최재봉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신 지 꼭 일주일이다. 허전함과 슬픔을 달래고자 독자들은 서점에서 선생의 지난 책들을 다시 집어들고 있다. 지난해 7월에 나온 선생 생전의 마지막 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물론, 등단작인 <나목>과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책들이 새삼스럽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모습이다.

주요 문예지들은 선생에 관한 특집을 긴급하게 배치하기로 했다. <작가세계>와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등 계간지 봄호는 이미 확정된 편집 계획을 수정해 어떤 식으로든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을 참이다. 최장수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 3월호도 선생과 생전에 교분이 있었던 문단 안팎 인사들의 추모 글을 특집으로 실을 예정이다.

세계사는 장편을 중심으로 한 전 24권 규모의 ‘박완서 소설전집’을 준비하고 있다. 선생이 만으로 팔순을 맞는 오는 9월1일(음력 8월4일)에 맞추어 한꺼번에 펴내기로 한 이 전집은 선생 자신이 기존 작품을 가감·첨삭한 ‘결정판 전집’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선생은 지난여름부터 큰따님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다시 읽고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여덟 권 정도의 작업을 끝낸 상태였다. 출판사는 선생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보고 완간일을 내년 1주기로 늦추기로 했다.

문단의 ‘영원한 현역’으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선생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의 제2회 심사 얘기다. 문학동네는 애초 지난해에도 심사를 맡았던 선생을 비롯해 여섯 분의 소설가·평론가에게 심사를 맡겼으나, 선생이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심사가 어렵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불과 이틀 전 따님이 연락해 오기를, 선생이 병석에서 열다섯 편의 심사 대상 작품들을 다 읽었으며 그에 대한 의견을 메모로 정리해 두었노라는 것. 선생은 후보작 가운데 일곱을 선정해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심사위원들이 선생의 견해를 참조해서 최종 심사를 한 결과 선생이 고른 일곱 편 중 네 편을 수상작으로 삼고 세 편은 다른 작품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대상은 선생이 대상 후보로 꼽은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에 돌아갔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은 문단 경력 10년 이하의 신진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선생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문학의 미래를 걸머지고 나갈 후배들의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견해를 남겼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며 상징적이다. 더구나 역시 그의 후배들인 다른 심사위원들이 선생의 견해를 일부는 받아들이되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아름답고 미덥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담당한 실무자가 심사에 얽힌 이런 이야기를 네이버 카페에 올리자 ‘소백산맥’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 그는 선생이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에 대해 남긴 평의 일부를 인용했다. “존재가 사라진 후에 다른 존재에 남긴 공동(空洞)의 크기가 살다갔다는 존재증명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구절이었다. 선생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표현은 아니었겠으되, 어쩐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선생의 장례는 끝나고 남은 자들은 모두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그가 남긴 빈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기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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