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4월30일 오후 4시 충남 논산 문화예술회관. 박범신의 소설 <소금>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소금>은 박범신이 등단 40주년에 내놓은 마흔 번째 장편소설. 가족이라는 이름의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에서 탈출한 주인공을 통해 물질과 욕망, 가족과 아버지의 의미를 되새겨 본 작품이다.
2011년 11월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작가가 그곳에서 쓴 첫 소설인 이 작품에는 옥녀봉과 평매마을, 탑정호, 강경 젓갈상회 등 논산 일대의 명소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날 출판기념회를 가리켜 작가는 “고향 논산과 그곳 사람들에게 드리는 신고식”이라 표현했다. 서울 등 타지에서 온 손님들이 없지 않았지만, 600석 가까운 규모의 대공연장을 가득 메운 것은 논산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그날 오전 상월면 한천리 케이티앤지(KT&G) 상상마당 논산을 출발해 이삼 장군 고택을 거쳐 금강대학교까지 10㎞를 박범신과 함께 걸은 이들이었다. 박범신의 제안에 따라 ‘내 고향 논산 땅을 걷는다’는 제목으로 마련된 이 행사는 매일 수백 명이 참가한 가운데 28일부터 5월2일까지 닷새 동안 이어졌다.
축하공연과 축사, 낭독 등의 순서가 끝난 뒤 황명선 논산시장이 작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논산인의 삶과 꿈을 유려한 필체로 그려내 한국문학은 물론 우리 논산에도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된 <소금>을 쓴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감사패를 받은 작가가 윗옷 속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흰색 편지봉투를 꺼내 시장에게 건넸다. 예정에 없던 행동이어서 조금 당황한 시장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봉투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박범신의 주민등록등본. 4월30일 그날자로 작가의 주소가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로 옮겨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에 시장이 감동의 표정을 지었고, 객석에서는 요란한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박범신이 고향 논산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황 시장의 꼬임에 빠져 2011년 11월 무작정 논산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사실 그동안 저는 과연 이곳 논산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다시 어디로든 떠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논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소금>을 쓰고 고향 땅을 제 발로 직접 걸어 다녀 보고 나서야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오늘로 저는 다시 한번 명실상부한 논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박범신이 태어났을 때 그의 고향 연무읍 봉동리는 전라북도 익산군에 속해 있었다. 이내 논산훈련소가 생기면서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논산으로 편입되었고, 그는 신춘문예에 당선한 1973년 4월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니까 박범신의 주민등록이 서울에서 논산으로 되옮겨진 것 역시 정확히 40년 만의 일이 된다.
“탑정호변에 있는 제 집 뒤뜰에는 암반 사이에 아름다운 연못이 있습니다. 저는 그 연못 곁에 자그마한 정자를 하나 지었어요. 정자 이름을 놓고 고민을 하다 결국 ‘유유정’(流留亭)이라고 붙였습니다. 편액에는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라는 뜻풀이도 곁들여 놓았지요. 저는 늘 떠돌기를 좋아하는 불안한 영혼입니다. 오늘의 주민등록 이전은 그런 저 자신을 더욱 단단히 논산에 묶어 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설명에 시장과 시민들은 더 한층 크고 따뜻한 박수로 격려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름답고 뜻깊은 출판기념회였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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