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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관된 지속적 미의식

등록 2011-02-18 20:19수정 2011-12-13 16:10

김윤식
김윤식
[김윤식의 문학산책]
사르트르, 마루야마 마사오, 박경리
1964년도 노벨문학상이 <말>의 작가 사르트르(1905~1980)에게 주어졌을 때, 세상은 놀라지 않았소. 그럴 만했으니까. 사르트르가 이 상을 즉각 거절했을 때도 세상은 놀라지 않았소. 역시 그럴 만했으니까. 이 두 가지 그럴 만함의 무게를 단다면 아마도 저울추는 후자 쪽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노벨상이란 좀 기운깨나 있고, 또 좀 운이 좋다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것. 그러나 이 상을 정면에서 그것도 즉각 거절할 수 있는 경우는 사르트르뿐이었으니까. 1945년 해방된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코자 했으나 사양한 것으로 되어 있소. 프랑스 한림원 회원,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되기도 거절했고, 플레이아드 총서에 드는 것조차 마다했다 하오. 유아독존, 천하의 사르트르라 부를 만하오. 오죽했으면 드골조차 “그는 하나의 정부다”라고 했으랴.

대체 무엇을 믿고 그는 그토록 잘난 척했을까. 스웨덴에 보낸 그의 성명에서는 ‘개인적 이유’라 했소. 그가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게릴라 투쟁에 노벨상이 휘말릴까 저어했기 때문이라 했소. 이런 말을 누가 곧이 믿으랴.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람이 <사르트르의 세기>(2000)의 저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 660면을 넘는 이 야심찬 책은 그 도도한 사르트르도 1968년 국민 공로상 일등 수훈자임을 밝혀냈소. 저자 말대로 실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러나 그게 어찌 기묘한 일일까 보냐. 씨가 이 저서에서 공들여 밝혀 놓은바 그 진상은 이렇소. 사르트르는 문학을 일종의 신경증상 또는 병증의 일종으로 보았는바, 이 질병을 유년기부터 앓아 오다 마침내 그 병이 치유되어 진짜 자유인이 된 경위를 그린 것이 <말>이라는 것. 요컨대 문학에의 결별선언서인 <말>에다 최고의 문학상이 주어졌다는 것. 아무리 유아독존의 사르트르라도 이 장면에선 속수무책이었던 것. 그러고 보면 사르트르란 참으로 겸허한 한 인간이란 느낌을 물리치기 어렵소.

문득 이 장면에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떠오름은 웬 까닭일까. 정치사상가 마루야마는 전후 일본사회에서 민주주의 사상 전파에 공헌한 인물. 그의 초국가 이론이라든가 일본 정치사상사의 학술적 천착에 압도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주 드물었을 터. 또 그는 저널리즘에도 가장 맹렬히 활동한, 이른바 만능선수이기도 했소. 그러나 본점(本店)인 사상사 연구 쪽은 별도로 치더라도 야점(夜店)인 정치평론 쪽을 문제 삼을 때 그 역시 오판, 실수, 착각에 빠졌다 하오(미즈타니 미쓰히로, <마루야마 마사오>, 2004). 만년에 가서는 자기의 주장인 사회민주주의조차 회의하고 부정할 정도.

역사에 대한 오판이나 실수 따위란, 그도 범속한 인간이었음을 웅변하는 것이라 놀랄 일은 못 되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일관된 미학엔 탈모할 만하오. 서위, 서훈, 혹은 국가가 주는 어떤 상도 받지 않았음이 그것. 아마도 그는 친지나 동료들의 수상식엔 참여하고 축하도 했을 터. 그러나 이 일관된 수상 거부의 지속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보다 윗길에 놓이는 ‘지속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들은 모두 생존시의 일. 사후에는 어떠할까. 작고한 <토지>의 작가에게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하오(2008. 5. 5). “우리 국민들이 너무 노벨상 운운하는 것도 사실은 자존심이 좀 상한다”(송호근 대담)라고 한 생전의 작가라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오래 남겨두고 싶은 사람도 있을 법하오.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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