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김윤식의 문학산책]
-다나카 아키라와 천관우
-다나카 아키라와 천관우
동선하로(冬扇夏爐)란 말이 있소. 겨울엔 부채, 여름엔 화로라는 뜻. 도무지 시절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빗대어 쓰는 말. ‘동선’이나 ‘하로’, 어느 한쪽만 떼어 사용해도 마찬가지. 이 중 앞의 것에 승부를 걸고자 마음먹은 이가 있었소. 이름은 다나카 아키라(田中明). 방 입구에 걸어둘 현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씨는, 언론인이자 고명한 사학자인 천관우씨를 찾아가 휘호를 부탁했다 하오. 파안대소한 천씨는 동선방(冬扇房)이란 휘호를 보내주었다 하오. 임술년추(壬戌年秋)라 했으니까 1982년이겠소. 이 휘호가 끝내 그의 방문 앞에 걸리지 못했는바 두 가지 이유 때문. 하나는 그림이나 글씨란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 다른 하나는 지난해 세밑, 씨가 타계했기 때문. 향년 84.
의사인 아비를 따라 한국에 온 소년은 용산 중학을 거쳐 대학 문과를 나와 유력한 신문사 기자로, 또 만년에는 한국 문제 전문지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했소. <서울 실감록>을 비롯해, <한국의 민족의식과 전통> 등의 저술도 여럿 있소.
하버드 옌칭 장학금으로 연구차 일본에 간 젊은 조교수인 나를 초청한 곳이 있었소. ‘조선 문학의 모임’. 이 모임의 의의는 각별했는데, 순수한 일본인들이 모여서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의 첫 결실이 <조선 문학-소개와 연구> 창간호(1970. 12)이오.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기 어려우나 이 모임은 몇 년 못 가 해산되었는데, 짐작컨대 연구진의 규모 성장으로 인한 자연스런 확산 작용이 아니었을까.
세대감각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지배자인 일본인으로 서울에서 공부한 씨의 기묘한 체험이란 이 자의식에서 한 번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오. 씨가 그토록 한국의 약점만을 지속적으로 가파르게 비판함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문득 저 루쉰을 떠올릴 법하오. 중국을 혹독히 비판하는 외국인은 신뢰할 만하다는 것. 적어도 그런 부류는 중국에 야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물론 씨의 경우는 루쉰과는 다르오. 씨의 무의식 속에선 한국은 외국이 아니었을 터. 그렇지 않고는 저렇듯 집중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비판할 이치가 없소. 심지어 <토지>의 작가를 향해서도 씨는 논쟁을 걸어마지 않았소(<신동아>, 1990. 8. 9). 한국이란, 씨에게는 언제나 한일 관계의 틀이며, 또 그것은 한결같이 비판의 대상이었는데, 이 집중성, 지속성의 근원이 애증의 콤플렉스에 있지 않았을까. 참으로 딱한 것은 세상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처럼 보였음이오.
씨는 아마도 우리의 판단에 펄쩍 뛸 것에 틀림없소. 나만이 모른다고? 어림도 없는 일. 그대들은 내 마지막 저서, 동선방 독어(獨語)인 <멀어져가는 한국>(2010)을 읽어 보았는가. 내 일생을 이끌어온 글쓰기의 키워드가 거기 들어 있다. 바로 두 글자 ‘서생(書生)’, 곧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 젊었어도 늙었어도 ‘서생’은 서생일 수밖에, 라고. 삼가 명복을.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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