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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당개 삼 년, 수월관음 향해 짖다

등록 2011-04-22 21:28수정 2011-12-13 16:08

김윤식의 문학산책
서당개도 자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오. 가끔 헷갈릴 적이 있소. 우리 것이되 우리 것 아닌 특별전 탓이외다. ‘통일신라 조각’(2008년 12월~2009년 3월)이 그 하나. 무수한 불상 중 보살상 하나에 서당개가 멈춰 섰소. 몸을 살짝 비튼 보살상이 아니겠는가. 저 요염한 보살상(금동, 15㎝)이란 대체 무엇인가. 더욱 헷갈리는 것은 그 소유주가 일본인 오쿠라(小倉)로 되어 있음이오. 헤겔 왈, 절대정신의 3형태 중 미(美)가 제일 저질이며 그 중간에 종교가 있고, 최고위에 철학이 있다 했것다. 종교가 미학으로 내려앉는 장면.

‘고려불화대전’(2010년 10~11월). 우리 것이되 우리 것 아님에는 조금 익숙해졌지만 이번에 부딪힌 것은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수월관음도. 그중에서도 물방울 속의 관음도(센소사 소장)와 수월관음(단잔신사 소장). 앞엣것은 작가도 분명하지만 기이하게도 물방울 속에 들어 있는 관음상이었소. 뒤엣것은 서당개 안목에서도 전시회 전체를 압도하고도 남는 것.

거대한 관음이 물가 바위에 걸터앉아 맨발을 드러내고 왼편으로 아주 산호초만한 크기의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소. 정병이나 버드나무는 어느 곳에도 없소. 해설에 따르면 이 아이가 바로 선재동자라는 것. 서당개의 헷갈림은 어디서 왔던가. 수월(水月)에서 왔소. 한결같이 수월관음이라 했으니까. 그렇다면 달은 어디에 있을까. 달도 없는데 어째서 수월이라 했을까. 귀가해서 화엄경 입법계품을 뒤졌으나 선재동자가 관음을 만나는 장면에서 수월이란 말은 그림자도 없었소. 법화경의 경우도 사정은 같았소. <도해 불상의 모든 것>(광문사) 속엔 33관음 속에 수월상이 있다고는 하나 자세에 대한 설명뿐.

주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서당개는 그다운 고집과 방도가 따로 있는 법. 스스로 보고 듣고 깨칠 수밖에. 그런 계기가 찾아왔소. ‘실크로드와 둔황’전(2010년 12월~2011월 4월)이 그것. 한때 주인을 따라 이 서당개도 가본 둔황. <왕오천축국전> 때문이었을까. 이 또한 우리 것이지만 우리 것이 아닌 것. 사람들이 펼쳐진 종이 앞에 묵묵히 서 있었소. 문자를 모르는 서당개인지라, 슬그머니 물러설 수밖에.

이 서당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따로 있었소. 기행문과 벽을 마주한 굽도리에 가까스로 걸려 있는 큰 그림 한 폭(147.9×146.4㎝). 유림굴(楡林窟, 13~14세기, 막고굴 동쪽 100㎞ 소재) 제2굴 서벽 남측에 있는 것의 모사품. 왈, 수월관음도. 이 서당개 발걸음을 뗄 수 없었소. 진짜 수월관음도였으니까. 머리에 화관을 쓰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오른손은 가슴 앞에 살짝 올려놓았고, 고개를 약간 들어 왼쪽에 있는 그믐달을 보고 있지 않겠소. 전체적으로 달빛이 비치는 공안에 위치해 있으며 뒤에는 산, 앞에는 물, 그리고 그림 한가운데 버들가지와 정병이 놓여 있지 않겠소. 서당개, 비로소 눈이 번쩍일 수밖에. 달이 거기 있었다! 그것도 그믐달. 관음은 정히 이 달을 그윽이 주시하고 계셨소. 대체 수월관음이라 하지 않고 달리 무엇이라 하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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