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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산업화론 가다듬고…진보, 민주화론 확장하고

등록 2011-05-12 21:17수정 2011-05-13 13:41

1970년 급속한 경제성장의 상징적 성과물인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위)과 같은 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아들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이소선씨(아래). 노동권·인권 탄압을 저질렀던 독재정권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는 박정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자료사진
1970년 급속한 경제성장의 상징적 성과물인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위)과 같은 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아들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이소선씨(아래). 노동권·인권 탄압을 저질렀던 독재정권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는 박정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23돌] 5·16 쿠데타 50년
보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 ‘선진화’론 새로 주장
‘산업화 덕에 민주화’ 독재불가피론 발전시켜

진보
이분법적 사고서 탈피…복합적 평가로 진화
“민주주의 정부가 경제도 더 발전시켜” 반격

학계의 ‘박정희 평가’ 변화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억눌렀던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는 늘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어쨌든 이만큼이라도 먹고살게 해주지 않았냐’다. 5·16쿠데타가 일어난 지 50년이나 지났지만, 박정희 시대 또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둘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논쟁거리다. 그러나 그 잣대가 단순히 ‘빵이냐 자유냐’의 문제는 아니다. 철권통치와 인권탄압, 압축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박정희 시대는 항상 그만큼 복합적이고 정교한 평가를 요구한다.

전통적 잣대, ‘산업화 대 민주화’ 기존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에는 압축적 산업화의 성과에 대한 찬사와, 독재와 철권통치에 대한 비판이라는 두 가지 주된 흐름이 있었다. 곧, 보수진영에서는 경제성장을 들어 박정희 시대의 압축적인 산업화를 치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고, 진보진영에서는 주로 민주주의를 틀어막았던 독재에 초점을 맞춰 비판했다. 당시 생존을 위해선 압축적 산업화가 필요했고, 독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식의 ‘개발독재 불가피론’은 보수진영의 평가에 뼈대를 이루고 있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박정희 시대의 독재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위로부터의 혁명’이 되며, 경제성장의 이유를 박정희 개인 또는 지배체제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경제성장이 독재를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또는 ‘경제성장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국가의 폭력적 착취 때문에 가능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산업화보다 그 밑에 가려진 민주주의의 문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이유로 박정희 시대의 독재정치에 동의했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라이트가 내세운 ‘선진화’론 1990년대 중반 ‘박정희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박정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나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 논란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산업화’를 내세웠던 보수진영의 논리는, 뉴라이트 출범 이래 ‘민주화’를 함께 거론하면서 한층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보수와 진보의 충돌 지점인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에 시간적 흐름에 따른 인과관계를 설정해,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 때문에 중산층이 형성될 수 있었고, 결국 이들에 의해 민주화도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는 논리로 발전한 것이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고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이 이런 주장을 펴는 주요 논자들이다. 이들은 전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박정희 시기를 평가하자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정리한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인 교과서 포럼이 내놓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면, 5·16을 쿠데타로 지칭하면서도 “급격한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물질·정신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근대화 혁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민주화의 결과로 이뤄진 민주정부가 경제적으로는 무능했다’는 비난과 맞물려 전개됐다.


진보진영의 ‘이분법’ 벗어나기 최근 진보진영에서는 기존의 규범적 평가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방향에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려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공과론’처럼 ‘박정희 시대에 고도성장이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는 받아들이자’는 논의도 있었고, 경제성장 요인을 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는 시도도 나왔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나 이병천 강원대 교수 등은 박정희 체제는 대규모 국민 동원으로 압축적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동원 논리의 보편성이 상실되면서 체제 자체가 무너지는 모순을 함께 안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관점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민주적 발전론’이다.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건국-경제성장-민주화-선진화 담론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지난 3월 민주·평화·복지포럼이 연 토론회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경제성장률, 고용, 무역수지, 투자, 총고정자본형성률 등 모든 면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 성적이 권위주의 독재체제보다 나았다는 점을 들어, “경제성장과 권위주의가 친화적이라거나 권위주의적 발전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에 순서를 정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민주화 없는 경제발전은 없다”고 말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브라질 등 국외의 보편적인 사례를 봐도,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독재와 경제성장을 무리하게 연결짓는 잘못된 관점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 시대에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배경에도 아래로부터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던 민주화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본다.

경제성장 자체에 대한 긍정을 경계한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자체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경제성장을 공(功)으로 보는 관점은 박정희 시대에 노동억압적 정책을 통해 자본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던 계급관계를 지속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경제성장의 명목으로 노동계급의 희생을 발판 삼아 만들어진 자본 우위의 계급관계를 긍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보현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박정희 시대 논의에 대해 “정치와 경제, 수단과 결과 등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등 절충적 견해를 취하는 경향이 확산됐다”며 “그 바탕에는 개발주의적·산업주의적 인식이 있다”고 비판했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성급하게 평가에 급급하다 보니, 쉽게 부정론이나 긍정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며 “새마을 운동이나 경제개발계획 등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박정희 시대의 실체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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