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외면>(1976)을 발표하면서 작가 선우휘는 비장한 선언을 했소.
“금년 55세, 이 나이에 내가 문학의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웃을 것인가”라고.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문학의 가치가 절대적 가치라는 것, 그러니까 정치·경제·언론·종교 그 어느 것으로도 안 되는 것에 있다는 것. 이런 깨침의 첫 번째 작품이 중편 <외면>.
“몬텐루파 일본군 전범 수용소가 있는 이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루 종일 내려쬐이던 햇빛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는가”로 시작되는 <외면>은 태평양 전쟁 직후 미군 포로 학대 죄목으로 처형을 앞둔 포로 감시원 조선인 하야시(임재수)가 비·시(BC)급 전범으로 처형되는 과정을 그렸소. 일본군은, <콰이강의 다리>(1952)에서 보듯, 조선인을 포로 감시원으로 기용했소. <콰이강의 다리>의 작가는 “고릴라처럼 생긴 조선인 감시원”이라 적어마지 않았소.
1921년 농부의 셋째로 태어난 임재수가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일제의 조선인 지원병(1943) 제도였소. 그런 그가 포로에게 가장 악독하게 굴었다는 것. 임재수가 한 짓은 상관인 모리 군조의 명령에 따른 것. 문제는 여기에서 발단되오. 상관이 모든 책임을 임재수에게 덮어씌웠다는 것. 임재수는 하야시(林)이기도 했으니까. 법률 전공의 미군 장교가 갈피를 잡지 못할 수밖에. 도쿄대 출신의 일군 소위의 자문을 구했으나 역부족. 왜냐면 모리 군조의 결정적인 발언 앞에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기 때문. “그는 조센징이니까요”가 그것. 이 기막힌 역사 앞에서 작가 선우휘가 깨친 것은 문학의 절대성이외다.
이병주의 <변명>(1972)은 어떠할까. 화자는 쑤저우(蘇州) 주둔 일군에 소속된 조선인 학도병 ‘나’. 이 작품의 중심부에 놓인 것은 탁인수라는 인물. 경북에서 나고 도쿄 더블유(W)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1944년 1월20일(조선인 학도병 4385명 일제 입영)에 용산 부대를 거쳐 중국 전선에 파견, 탈주했고 조선인 부대를 만들 목적으로 상하이에 잠복했으나 일제 헌병에 체포되어 군사재판을 받아 처형되오.
“너는 조선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재판관의 질문에 탁인수의 답변은 이러했소. “가능하든 않든 꼭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반성하는 빛이 있으면 너를 살려줄 수도 있다”에 대한 탁인수의 대답은 이러했소. “나는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너의 불충, 불효, 불손한 행위가 너의 가족에게 미칠 화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에 대해 탁인수의 대답은 이러했소. “나의 불효는 장차 역사가 보상해주리라고 믿는다”라고. 8·15가 왔을 때 ‘나’는 물론 그 엄숙한 탁인수의 역사 속에 끼어들 수 없었다고 했소. 왜냐면 ‘나’란 일군의 용병, 한 마리 버러지에 불과했으니까.
가진 것 없는 임재수, 그는 출세를 위한 지원병이었으나, 탁인수나 ‘나’는 학도병이었소. 임재수가 역사를 몰랐다면 탁인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소. 이 나라 문학이 이 두 부류의 인간의 역사를 한동안 잊지 않았던가. 혹시 4·19의 문학적 감수성(자유)이 이를 눌렀음일까. 4·19도 문학의 절대성이었으니까.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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