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선임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창작에 못지않게 비평 또한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작업이다. 비평가의 발언은 그의 방 책상에서 작성되어 잡지나 단행본 또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비평문의 목소리는 단일하고 단조롭기만 했다. 단일한 목소리가 지배하는 작품을 비판하던 평론가들이 정작 자신의 비평문에서는 하나의 주장과 어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비평에서의 다성성(多聲性)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문화웹진 <나비>가 마련한 ‘비평 테이블’ 코너가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젊은 평론가 세 사람이 동일한 작품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형식인데,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때론 화음을 이루고 때론 불협화음을 빚으며 하나의 텍스트를 다층적이며 다각도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2009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모두 열세 차례(2010년 9월은 건너뜀) 이루어진 비평 집담(集談)이 최근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박진·김남혁·장성규 세 비평가가 공저자로 되어 있지만,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앞부분 세 차례의 대담에는 장성규가 아닌 서희원이 참여했는데, 책으로 만들면서는 그의 발언이 빠진 채 두 사람의 대화처럼 처리되었다. 네 번째부터 장성규가 가담했지만, 김영하를 다룬 꼭지에는 김남혁 대신 조효원이, 청소년문학 편에는 장성규 대신 소영현이 자리를 채웠다.
이 기획이 진행된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 말까지 문단과 독자들 사이에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일큐팔사>(1Q84)였다. 집담의 첫 꼭지를 이 작품에 할애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선인세 10억원’으로 출간 전부터 화제를 낳았고, 출간 뒤에는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서 승승장구했던 이 소설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그러나 인색하기만 하다. “제일 불만스러운 것은 혁명과 종교와 사랑 중에 오로지 사랑만이 인간에게 해방을 줄 수 있다는 식의 태도”(김남혁), “시스템의 강고함을 극대화하여 모든 실천을 무력화하는 끔찍한 세계관”(박진)이라는 비판이 퍼부어진다.
“서술의 초점이 교체되는 방식이 텍스트를 다성적이 아니라 오히려 단성적으로 만들면서 매우 권위적인 방식의 발화로 변질되”(박진)는 <엄마를 부탁해>나 “민주화운동이나 사회 문제 같은 것들이 낭만적인 사랑과 청춘의 분위기를 위해 소비된(듯한)”(박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같은 신경숙 소설에 대한 비판 역시 신랄하다. “대중문화적 감수성이 단지 소재적 차원이나 기법적 차원에만 한정돼 있어서 시에프(CF)처럼 소비된다는 느낌”(장성규)을 주는 김영하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역시 비판을 비켜 가지 못한다.
이기호의 장편 <사과는 잘해요>의 인물 묘사에서 알레고리적 단순성을 보는 김남혁과 모호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사는 박진 사이에 의견이 맞서는 모습은 다성적 비평의 실례를 보여준다.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곤 하던 세 사람은 집담회의 마지막 꼭지를 ‘혼자 읽기 아까운 2010년의 소설’에 할애했다. <1인용 식탁>(윤고은), <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 <백의 그림자>(황정은), <고백의 제왕>(이장욱) 네 권을 골라 그 장단점을 섬세하게 짚은 이들은 장편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는 현 단계 한국 소설에 대한 고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장편소설의 진짜 매력은 긴 스토리를 통해 세계와의 대결이랄까, 이런 지점을 폭넓게 보여주는 걸 텐데, 지금은 그런 장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장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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