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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식민지 조선서 ‘인간해방’ 읊은 사토 교수의 무덤을 찾아

등록 2011-08-19 17:46수정 2011-12-13 16:04

김윤식의 문학산책
일본 열도가 폭염으로 달아오른 2010년 7월19일(일). 후추(府中)시 소재 다마레이엔(多磨靈園)을 찾아갔소. 1923년에 개설된, 공원 풍경을 도입한 대규모 묘지. 조선총독과 수상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태평양 전쟁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등을 위시, 헌법학자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 문인으로는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 기쿠치 히로시(菊池寬),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마사무네 하쿠초(正宗白鳥) 등, 150명의 명사 명단 속에는 내가 찾는 인물, 사토 기요시(佐藤淸, 1885~1960)는 들어 있지 않았소.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일급 시인이라고는 하나 최고급에 들지 않았고, 일급 영문학자이긴 하나 그 역시 좌장급은 못 되었고, 교수이긴 했으나 식민지에 두 번째로 세워진 경성제대 교수에 지나지 않았소. 그럼에도 내가 그를 찾아간 이유엔 설명이 없을 수 없는데, 그것은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소. 긴 얘기부터 조금 말하고 싶소.

두 번씩이나 영국 유학을 한 바 있고 독실한 침례교 신자이자 시인인 그가 개교와 더불어 부임하자마자, 맨 먼저 <경성의 비[雨]>를 읊었소. “비는 한국인의 저주보다 격렬하게 쉼도 없이 내리도다. 뱀처럼 대가리를 드는 정복자의 검은 의식에/ 얼굴을 돌리며 유리문에 미친 듯 불어제치는 비를 보도다/ …/ 뇌신경을 깨부수는 두려움 앞에/ 머리를 드리우고 깊이 생각해도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좋단 말인가/ 비여, 언제까지 내릴 것인가. 나는 울고 싶다.” 이러한 자의식을 안고, 조선의 밤하늘, 땡볕의 황토, 목을 조르는 듯한 겨울을 읊었고, 또 혜자, 담징 등 고대 한일문화교류의 서사시도, 또 학도 출진도 읊었소. 강의실에서는 최고 수준의 키츠와 엘리엇을 가르쳤소. 정년을 맞아 귀국한 것은 제국의 수도가 폭격으로 타오르는 1945년 3월이었소.

여기까지가 긴 얘기이오. 짧은 얘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체 그가 교수로 있으면서 무엇을 가르쳤고, 또 느꼈을까이오. 그는 이렇게 회고했소. “20년간 조선인 학생과 교제하는 동안, 얼마나 그들이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외국문학 연구에서 찾고자 하고 있었던가를 알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경성제대 문과의 전통과 학풍’)라고. 외국문학 연구란, 조선인 학생에겐 학문이기에 앞서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열망이었던 것. 이것이 진실로 보이는 것은 사토 기요시라는 인간의 실감이기 때문.

경성제국대학은 물론 외국문학과도 무관한 내가 굳이 이 염천에 그의 무덤에까지 찾아간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소. 졸저 <최재서의 ‘국민문학’과 사토 기요시 교수>(2009) 때문이었다면 그런 것은 한갓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 다만 나는 문학을 통해 내 자신의 ‘해방과 자유’를 찾고 싶었던 것. 그런 내 자신이 문득 부끄러웠소. 사토 기요시 교수의 무덤에 피어 있는 무궁화 한 그루가 나를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오.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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