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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보 제100호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등록 2011-11-13 20:15수정 2011-12-13 16:02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르거든 전통 염료 식물원을 거닐어야 하오. 거기 오리나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산새도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라고 소월이 읊은 그 나무. 5리마다 이정표를 삼았음에서 나온 이름. 산새는 왜 하필이면 오리나무 위에서 울었을까. 그야 삼수갑산을 넘고자 함이었지요. 그런데 오리나무 열매에서 무슨 물감이 나왔을까. 조금만 품을 들이면 여뀌풀이 고개를 숙이고 있소. 시골 갯가에 지천으로 붉게 피는 여뀌엔 독이 있어 물고기를 마비시켰소. 당대의 묵객이자 황금단추 6개를 뽐내던 정지용이 가모가와(교토) 개울가에 서서 멋들어지게 읊었것다. “여뀌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부기 홀어미 울음 울고”라고. 그 바로 옆에 꼭두서니가 있소. “보라, 옥빛, 꼭두서니/ 보라, 옥빛, 꼭두서니/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라고 미당이 읊었것다.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소불하 이처럼 이 나라 시 문학사를 꿰뚫지 않고 어찌 거울 못에 비친 금강 소나무 숲으로 나서리오.

금강송 숲이라, 이번엔 만해 선사의 도움이 절망되오.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라는 속삭임이나, 금강송 숲 여기저기 보물처럼 감추어진 옛 탑들에서 나는 향기 말이외다. 그런데 보시라. 저 화려한 배롱나무의 새빨간 잔치. 그것도 다섯 그루나 되는 화사함. 꽃도 없는 데서 나는 향기를 만해가 심안(心眼)으로 헤아리고 있었다면 지금 저기 배롱나무의 찬란함이란 무엇이리오.

이 물음에 통째로 맞서는 것이 이 나라 국보 제 백호이오(국보에 번호 달기란 총독부 시절의 유제인 듯). 남계원(개성) 7층 석탑이 그것. 통일신라기의 양식에다 위로 중후함을 가진 고려 초기의 양식. 어째서 국보급에 올랐을까. 그야 아름다우니까. 미란 새삼 무엇이뇨. “우리를 침묵케 하는 것이자,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릴케) 말을 바꾸면 국보이기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 아름답기에 국보일 수밖에 없는 것. 그 이유를 아시는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슬기롭게도 이렇게 밝혀놓았소.

오른쪽에 홍제동(서울) 5층 석탑(보물 제166호)을 세웠소. 위층이 소실되었음에도 5층이라 우기며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5층 석탑을 보시라. 층마다 덧받침이 있는 특이한 양식이기에 보물급에 오를 수조차 있었소. 이래도 부족한가, 라고. 누구의 구설수에라도 오를까봐 국보 제 백호는 수천사(원주) 삼층 석탑으로 뒤를 감시하게 했소. 이래도 할 말이 남았는가, 라는 표정으로 국보 제 백호가 서 있소.

여기까지 오면 문득 만해 선사의 심안이 사무치오. 꽃도 없는 데서 나는 향기 말이외다. 시방은 한겨울. 화사한 다섯 그루의 배롱나무도 앙상한 몸뚱이만 남았고, 오리나무도 그러하오. 여뀌풀, 꼭두서니는 흔적조차 사라졌도다. 그들은 모두 푸른 이끼를 걸쳤도다. 이끼를 걸친 그들은 옛 탑을 꿈꾸도다. 옛 탑 위로 트인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를 꿈꾸고 있도다. 박물관 동관 실내 3층에 앉아 계신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과 함께 꿈꾸고 있도다. 미륵처럼 계절을 온몸에 담으며 민중과 더불어 길거리에 앉아 계신, 아 우리의 국보 백호의 사람다움이여.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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