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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신동엽창작상’ 시인 송경동
수상석엔 주인잃은 의자만

등록 2011-11-27 20:19수정 2012-08-07 09:26

최재봉의 문학풍경
시상식장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주인 잃은 의자에 덩그러니 붙은 이름표만 안쓰러웠다.

지난 22일 한국언론회관 20층 국제회의장에서는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문학상 합동 시상식이 열렸다. 만해문학상과 백석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창비장편소설상, 창비신인시인상, 창비신인소설상, 사회인문학평론상 등 7개 부문의 수상자 일곱 사람이 수상자석을 지킨 가운데, 소설가 김미월과 함께 신동엽창작상을 공동 수상한 시인 송경동의 자리만은 끝내 공석으로 남았다. 시인은 지금 갇힌 신세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고공 크레인 농성을 지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한 혐의다.

한 해의 소출을 결산하고 그중 탁발한 성과를 낸 이들을 기리며 신인들을 환영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문학상 시상식은 축제이자 잔치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수상자가 잔치 마당에 나타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시상식의 진짜 주인공은 송경동이라 할 만했다.

주최측인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은 인사말을 하고 단상을 내려갔다가는 다시 올라왔다. 송경동의 빈자리를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백 편집인은 “희망버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뒤 경찰에 자진출두한 사람을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한 처사는 대단히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축사에 나선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린 송경동의 신동엽창작상 수상소감을 언급했다.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재청구되기 이틀 전에 쓴 이 소감에서 시인은 “영광이다”라는 말을 썼는데, 신동엽창작상 수상 결정이 아니라 체포영장 발부가 영광이라는 것이었다. 염무웅의 지적처럼 이 말은 명백히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사형을 선고받고서 김병곤이 했던 말 “영광입니다”의 메아리였다. 염무웅은 “송경동을 비롯한 이 시대의 수많은 ‘범법자’들이 결국 무죄로 판명나고 ‘영광’이 현실이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시인의 아내이자 르포 작가인 박수정이 남편을 대신해서 상을 받고 소감을 밝혔다. 그날 아침 유치장에서 보내 왔다는 소감에서 송경동은 “시인의 탈을 쓴 전문 시위꾼으로 수구 언론에 의해 낙인찍혔을 때 신동엽창작상이 다시 시인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었다”며 “이번에는 꼭 몇 달이라도 살고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박수정은 “진찰 결과 기륭전자 고공농성 때 떨어져 다친 발을 재수술해야 하며 목 디스크도 심각한 상태”라고 시인의 근황을 전했다.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송경동의 빈 의자 옆자리를 지킨 도종환 시인은 수상 연설에서 “희망을 기획하는 시인이 수감되어야 하는 이 시대는 절망과 야만의 시대”라며 “우리가 희망을 향해 몸부림칠 때에만 희망은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다. 송경동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시인 김선우는 각자의 책에 탄원서명을 써서 재판부에 보내자는 ‘북적북적 운동’을 제안해 동료 문인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다음주에 나올 그의 산문집 제목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새삼 아프다.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의 맨 앞에 실린 시 ‘혜화경찰서에서’는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상황을 그린다. 핸드폰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따위를 들이밀며 “알아서 불어라” 하는 경찰을 향해 그는 우아하게 대꾸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그는 지금 무엇을 불고 있을까? 24일 구치소로 이감된 시인의 구속적부심이 29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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