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최재봉의 문학풍경
전북도립미술관은 전라북도의 진산 격인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등산로 입구답게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즐비하지만, 이 무렵이면 만개한 벚꽃이 발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1층 상설전시실에서 지금 ‘전북 사람들’이라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이달 29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는 판화가 남궁산이 작업한 전북 지역 문인들의 장서표가 나와 있다. 안도현 시인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북작가회의가 미술관과 함께 이 전시를 유치했다.
장서표란 책 임자가 자신의 책에 붙이는 엽서 크기 안팎의 판화 작품을 이른다. 책 주인의 이름과 그 주인에게 어울리는 이미지, 그리고 장서표를 가리키는 라틴어 ‘EX-LIBRIS’라는 글자로 이루어진다. <봄처녀>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목판화가 남궁산은 1990년대 초부터 장서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을 해 왔다. 그동안 문인과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400여점의 장서표를 새겼고 크고 작은 장서표전만 10여차례 열었다. 장서표 주인인 ‘표주’들과의 만남을 글로 풀어 쓴 <인연을, 새기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전북 사람들’전에는 전북작가회의 소속 문인 20여명과 전북 출신 문인 10여명, 그리고 작고한 박완서·이윤기를 비롯해 남궁산이 그동안 작업해 놓은 문인 및 문화예술인 70여명 등 모두 100여명의 장서표가 나왔다.
총선 다음날인 12일 오후 전시장에서 있은 공식 개막 행사에는 그 자신 표주이기도 한 송하진 전주시장과 김용택·안도현 시인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때부터 남궁산과 인연을 맺은 송 시장의 장서표에는 옛 전적 형태의 바탕에 그가 좋아하는 산과 물, 그리고 연꽃 이미지에 서예가 집안다운 필치로 손수 쓴 자신의 호 ‘취석’(翠石)이 함께 들어 있다. 김용택 시인의 장서표는 그의 고향 마을 진메의 명물 느티나무가 도드라지고, 80년대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인 오송회에 연루되어 고초를 치른 강상기 시인은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에 무궁화꽃을 새겼다.
장서표 액자 아래에는 표주를 설명하는 짤막한 글이 덧붙여져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시인이기도 한 최동현 군산대 국문과 교수에 대해서는 “최고의 판소리 연구가인데 술자리에서 엿듣는 소리 솜씨도 꽤 일품”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정년퇴직 후 술도 담배도 다 끊었다는 후문. 하지만 영혼은 여전히 문학청년이라는 평가”는 정양 시인의 이야기이고, “다른 작가의 책을 만들어 주느라 아직 자신의 시집을 엮지 못했음”은 김제 출신의 출판인이자 등단 시인인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해 고향 장수로 내려온 시인 겸 소설가 유용주의 장서표는 고릴라 한 마리가 책을 들고 귀엽게 웃고 있는 모습인데 설명은 단 한 줄로 간명하다. “별명은 고릴라.”
12일 오후 공식 개막식에서 남궁산은 “책이 귀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장서표를 반드시 문인과 학자의 전유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라면서 “장서표와 함께, 판화를 도장 형태로 축소한 장서인은 일반인들에게도 쓰임새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장은 “회화 중심의 전시를 주로 마련해 온 미술관으로서는 이번 장서표전이 장르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평소 미술과는 거리가 있었던 문인과 문학 애호가들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미술관에 더 자주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재봉
<한겨레 인기기사>
■ 출산 뒤 “피곤해” 거부…남편의 폭발 “내가 짐승이야?”
■ 부모가 싸울 때마다 아이는 떨고 있었다
■ 가수가 꿈이었던 알마, 꿈대신 성매매 감옥으로…
■ 검찰, ‘불법사찰’ 진경락 구속영장 청구
■ 연해주에 ‘표범 나라’ 생겼다
■ 출산 뒤 “피곤해” 거부…남편의 폭발 “내가 짐승이야?”
■ 부모가 싸울 때마다 아이는 떨고 있었다
■ 가수가 꿈이었던 알마, 꿈대신 성매매 감옥으로…
■ 검찰, ‘불법사찰’ 진경락 구속영장 청구
■ 연해주에 ‘표범 나라’ 생겼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