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지난 3월 하순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 갔소. 맨 먼저 맞이한 것은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몽둥이같이 생긴 엄청 큰 엉겅퀴꽃. 계속해서 갖가지 색깔의 엉겅퀴가 벽에서 그냥 쏟아지는 것 같았소. 쏟아지다니, 정확하지 않소. 쏟아짐이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 별에나 알맞은 표현이니까. 그게 아니라, 야구 방망이처럼 일제히 튀어나왔소. 주춤 뒤로 물러설 수밖에.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또 일요일인데도 구경꾼이 거의 없음에 새삼 감사했소. 아무도 방망이에 맞고 있는 내 꼴을 보지 못했으니까.
설마 구경꾼을 후려치기 위해서일까. 저렇게 많은 방망이여야 했을까. 심지어 여행 가방에까지 올라타고 있는 엉겅퀴. 불타는 방망이들. 그렇다면 저 전시실을 가득 채운 엉겅퀴꽃이란 대체 무엇이며 또 어디서 온 것일까.
<돈황의 사랑>(1983)의 이 소설쟁이가 나와 무슨 원수가 졌기에 방망이로 내리친단 말인가. 1980년대 가난한 남녀가 셋방이 하도 추워 쇠침대를 들여놓고 연탄을 피웠다 하오.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낙태수술을 하고 말았소. 아기를 누일 공간도 없는 쇠침대. 이를 두고 ‘돈황의 사랑’이라 불렀소. 만일 지운 아이가 남자라면 봉산탈춤의 사자가 되었을 터, 여자라면 자라서 세종문화회관의 비천상이 되었을 텐데도 말이외다.
그 방망이를 맞고 보니, 내가 80년대의 딱 한가운데에로 와 있지 않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소설 읽기에 공을 들여온지라 윤씨의 소설 <엉겅퀴꽃>(1985)도 읽었소. 돈황과 명사산을 헤맨 지 두 해가 지난 시점. 실업자가 된 작중 화자인 ‘나’의 헤맴이 거제도까지 뻗었소.
거기서 ‘나’가 본 것은 6·25적 포로수용소의 흔적. 이젠 폐허가 된 그곳에서 본 것이 엉겅퀴꽃. 갓 잡아 저며 놓은 무슨 생선의 살코기처럼 선연한 엉겅퀴꽃! 이 선연한 엉겅퀴가 몽둥이가 되어 나를 후려칠 이치가 없고 보면, 대체 그 몽둥이는 어디서 왔을까.
작가 윤씨는 이 점에서 아주 솔직했소. 어떤 회사 선전 책자에 실을 원고를 청탁받았다는 것. 그 책자의 ‘제1호’가 엉겅퀴였다는 것. 거기 그려진 도안이 이러했다 하오. “삐죽삐죽한 톱니꼴의 잎사귀가 머리털이 곤두선 인형의 얼굴 또는 파인애플 같았다”라고.
작가도 자라며 흔히 보았을, 씨방 주머니가 두툼한 연보랏빛 꽃인데, 어째서 책자의 도안에서 이를 새삼 확인한 것이었을까. 도안이 아니었던들 엉겅퀴꽃은 없었던 일. 그러니까 도안 따로, 현실 따로였다는 것. 이 위화감, 다시 말해 이 도안이 몽둥이가 되어 나를 후려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도안 따로 실물 따로의 위화감이 먼저 소설가 윤씨를 후려치지 않았을까.
이번엔 소설가 윤씨의 차례. 윤씨는 삶의 세파 속에서도 쉬지 않고 이 위화감과 싸워오지 않았던가. 윤씨가 도안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것다. 뿐만 아니라 실물을 향해서도 휘두르지 않았을까. 통렬한 복수극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해방되는 길은 이 길밖에 더 있으랴. 지하철로 귀가하면서 나는 나대로 몽둥이에 맞은 허리가 새삼 아리기 시작했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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