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흔히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엿볼 수 있는 작품집이 나왔다. <포맷하시겠습니까?>(한겨레출판)가 그 책으로, 1975년생 손홍규에서부터 1984년생 김사과까지 젊은 작가들의 신작 단편이 망라되었다. 이들을 한데 묶은 것은 한국작가회의 산하 민족문학연구소 소속 평론가들. 책 뒤에 붙인 좌담에서 평론가 노지영이 지적한 대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비정규직, 비혼자, 비정상인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처지를 말해 주는 바가 있다.
김미월의 <질문들>의 주인공은 앙케트 조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만년 작가 지망생.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듣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이 인물에게 세상은 질문들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질문을 생업으로 삼는 그에게 돌아오는 질문들이란 “질문이라기보다 명령이나 권유에 가까웠다.” 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에서도 대학 졸업 뒤 3년 가까이 취업 준비에 매달렸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주인공은 주유소 안내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사장이 인사하는 마네킹을 들여놓으면서 알량한 일자리마저 빼앗기게 된 그는 한밤중에 주유소에 침입해 마네킹을 창고에 처박은 뒤 자신이 마네킹 노릇을 대신 한다.
최진영의 <창>에서도 주인공은 사보 제작 대행사의 비정규직 사원이지만, 그에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회사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출근 카드를 감추고 점심에도 끼워 주지 않는 식의 괴롭힘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던 그는 어느 날 점심시간에 동료들의 컴퓨터 파일을 삭제하거나 프로그램을 망가뜨려 놓은 뒤 회사를 나온다.
책 뒤의 좌담에서 평론가 서영인은 “일반적인 평단의 평가와는 달리 이들 작가들이 의외로 사회적 문제나 동세대의 현실에 대해 개성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지영은 “(수록작들이) 젊은 세대들이 능동적인 해석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텍스트들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젊은 직장 여성의 허영을 그린 김애란의 <큐티클>, 국내 거주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가난과 철거의 문제를 다룬 조해진의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는 두 작가의 특장을 잘 살린 작품으로 꼽혔다.
역시 좌담에 참여한 평론가 장성규가 파악한 대로 수록작들 중 상당수는 “실험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김사과의 <더 나쁜 쪽으로>가 대표적인데, ‘홍대앞’으로 짐작되지만 “도쿄와 런던과 캘리포니아가 뒤섞이는” 무국적의 거리를 무대로 삼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세계 전체의 비속함과 타락을 상대로 열에 들뜬 듯 분노와 환멸의 언어를 쏟아 낸다. 이 작품에 대해 노지영이 “자유 연상이나 음악이나 랩에 가까운 몸의 언어… 이러한 물질적인 언어들이 주는 감정적인 일렁임”을 평가한 반면, 역시 좌담에 참여한 평론가 고명철이 “냉소주의와 혐오의 정서” “죽은 미학”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대목도 흥미롭다.
손아람의 <문학의 새로운 세대>는 앙숙 관계인 원로 평론가와 중견 소설가가 신춘문예 심사장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통해 문학 제도와 문학 권력을 풍자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평론가와 소설가의 치열하고도 유치한 자존심 대결 끝에 결정된 당선자가 기자의 질문에 한국 소설은 별로 안 읽었노라고 답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나치게 미학적이거나 일종의 문학주의적인 방식에 국한되었던”(서영인) 문단 문학에 대한 야유로 읽힌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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