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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단편으로 일관했던 레이먼드 카버
-‘평전’에 부쳐

등록 2012-07-22 20:24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넓은 대지에 당신 멋대로 집을 지어 달라고 위탁받은 건축가가 있소. 20평짜리 삼각형 대지에 5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의 설계를 위탁받은 건축가가 있소. 후자의 경우 건축가는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단편이 바로 그러한 것. 고도의 기교가 요망되는 이른바 ‘문학적 글쓰기’가 이에 해당되겠지요. 레이먼드 카버(1938~88)가 특히 그러하지 않았을까. 900쪽이 넘는 캐럴 스클레니카의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2009)을 위의 물음에 주목하며 읽는다면 어떠할까.

이 평전의 기본 구도는 다음 세가지. 작가 주변의 인물과의 관련 양상이 그 하나. 둘째는 미국 출판계 인사들과의 교섭. 작품 성패를 결정하는 명편집자를 수두룩하게 갖추고 있는 출판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소. 절제된 대화체의 카버의 작품을 철학도 없는 공허한 것, 미니멀리즘이라 했다가도 천사의 손이라 추기기도 하는 것. 토머스 울프를 키워낸 명편집인 맥스웰의 전통을 가진 미국 식의 자존심이랄까.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 고급 월간지가 미학으로서의 문학적인 것으로 실을 수 있는 분량. 게다가 오 헨리의 나라의 전통이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지 않았을까.

셋째는, 이 점이 중요한데, 작가와 대학의 관계. 아마도 미국 인문학의 한 갈래인 글쓰기(문창과)의 활성화를 위해 작가를 대학이 요구했다는 점이 이 평전 속에 상세하오. 카버는 여러 대학에서 선생 노릇도 했고, 곳곳에서 자작 소설 낭독회도 가졌으며, 또 하나 구겐하임 등 곳곳에서 주는 창작 기금 수혜자였소.

문학이 무엇이기에 대학이 이토록 작가를 고양하고 부추겼을까. 아마도 1960년대에 이미 대학 인문학에 위기감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이 경우 단편에서 승부가 빨리 결정된다는 것.

위의 세가지는 내가 주목해본 것에 지나지 않소. 내가 이 평전을 공들여 읽은 것은 다름 아니오. 겨우 읽어본 것이 단편집 <대성당>(김연수 역)뿐이라, 그것도 겨우 번역판으로 읽은 꼴에, 여기 실린 작품들을 어찌 감히 언급할 수 있으랴. 그렇기는 하나, 어떤 인상적인 것은 감지되는 법인데, <대성당>에 그런 것이 있었소.

아내의 옛 친구인 늙은 맹인이 찾아오자, 불편해진 남편의 방어기제가 조금씩 열려 두 남자가 종이에 함께 대성당을 그려 보이고 있소. 드디어 두 사람의 소통이 조금 이루어진다는 것.

평전의 저자는 이 장면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내 궁금증은 여기에 있었소. 저자는 두 번째 아내인 갤리거의 체험담과 관계 있다고 적었소. 지문 채취하는 일과 눈멂의 은유가 핵심이었다는 것.

이러한 평전 방식은 작품과 작가의 삶이 가진 의의로 나아가지 않음이 원칙이오. 작품과 작가의 삶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르트르식 ‘실존적 정신분석’과는 별개라 하겠소.

<성 주네>(1952)에서 보듯 사르트르는 작품과 작가의 실존적 정신분석을 행하고 있는데, 바로 평전이 인간 탐구의 새로운 방식인 문학비평급에 들기 때문이오.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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