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문학관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고바야시 다키지와 윤동주

등록 2012-09-16 20:19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박이엽 역, 창비신서 143)의 저자 노마 필드(시카고대 동아시아학과)는 전후 일본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나 경계선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소. 내가 만났을 때 상냥한 중년 일본 여성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소. 당연히도 일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저서도 영어로 내고 있었소. 그러한 씨가 <당생활자> <해공선>(蟹工船) 등의 작가로 고명한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의 평전 <고바야시 다키지>(이와나미신서, 2009)를 일어로 썼다 하오. 일어로 쓰는 것은, 더구나 이 작가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도, 편집자의 권고에 힘입어 그렇게 했다 하오. 내가 이 장면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중어 글쓰기의 차원이 아니오. 이 책에 실린 사진 한 장 때문이오.

고문 끝에 죽은 고바야시의 시신 사진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 속에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문학관(홋카이도 오타루 문학관)에 전시된 그 사진이 오늘날에는 철거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것도 들어 있소. 이 사진이 문학관에 전시되는 것은, 고문사(拷問死)가 국가 행위로서는 도리에 벗어난 짓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알아도 글자로만 읽고 아는 사람들에겐 중요하겠으나, 비참한 것은 그 때문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서 지우기 쉬우리라는 점이오. 더욱 딱한 것은 만일 전시되었어도 눈앞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의식에서 사라질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인지라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본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반응하는 것이 그 증거일 수도 있으리라.

이런 것들은 이웃 일본의 사정이라 우리와는 일단 선을 그을 수 있는 사인이라 할지 모르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소.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1945. 2. 16)한 것도 바로 고바야시 다키지를 죽게 한 그 힘이었으니까요. 역저 <윤동주 평전>(송우혜)에 따르면 규슈 의대의 생체 실험에도 이용당한 흔적이 있었다 하오. 듣건대 모 구청에서는 윤동주 문학관을 마련했다고 하오. 그러나 심히 아쉬운 것은 윤동주의 시신 사진이 전무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소. 친지, 가족들의 증언만 있을 뿐이외다.

잠깐, 지금 그런 여유 있는 말을 늘어놓아도 될 일일까. 그렇군요. 윤동주의 경우는 너무도 가파른 형국이었으니까.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스려야 적절할까요. 쉽사리 해답이 떠오를 수는 없지 않을까. 교토 소재 도시샤(同志社)대학에 가 보시라. 거기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소. 어째서 이 대학은, 또 교토 시민들은 그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일까.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이 시인의 죽음이 이런 시비라도 세워야 치유될 수 있는 실마리라도 될지 모른다는 믿음에서 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도시샤대학의 미션스쿨다운 발상이라면, 또 교토 시민의 문화적 감각이라면 이 치유가 한일 간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사의 굴절에 대한 치유를 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을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선관위 “안랩 백신 무료 배포, 선거법 위반 아니다”
안철수 중심으로 헤쳐모여?
태풍 불어 배 떨어지면 농민 책임?
이방인의 ‘리틀 시카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반미 시위 촉발시킨 동영상 제작자 “영화 만든 것 후회안해”
“집안일 많이 하며 죄악을 씻고 있어요”
[화보]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의 눈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