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도쿄(東京)/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청년의 가슴은 바다보다 더 설레었다”(<해협의 로맨티시즘>, 1938)라고 임화는 읊었소. 이광수들도 그러했다고 김동인이 증언했소. “네 칼로 너를 치리라!”라고. 심지어 <오감도>의 이상조차 그러하지 않았을까. 과연 제국 일본의 수도 도쿄에는 진리, 학문, 예술, 과학이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있었던 것일까. 직접 가볼 수밖에. <오감도>(1931)의 시인은 대번에 속았다고 직감했소. “가짜다!”라고. 올 수도 갈 수도 없어 그는 거기서 죽을 수밖에.
이광수들은 죽지 않고 <무정>(1917), <삼대> <고향>을 썼소. 임화들도 죽지 않고 카프 서기장으로 버틸 대로 버티었소. 홰보다 밝게 타는 별이라 자부했기에 어찌 죽을 수 있으랴. 잠깐, 과연 죽지 않는 방도가 이런 것밖에 없었을까, 라고 누군가 토를 단다면 어떠할까요. 이렇게 토를 단 사람은 필시 이런 시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씨여!”(<해협의 오후 두 시>, 1933)
모든 것이 있다는 도쿄에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했소. 이른바 관부연락선. 한밤중 현해탄을 건너는 청년들에게 어찌 잠이 오겠는가. 자작의 아들도 아니고, 기껏 충청도 옥천 출신의 청년 정지용이 가진 것이라곤 ‘청춘’뿐이었던 것. 이 청춘이란 얼마나 무겁고 굉장한가! 왜냐면 ‘조국’과 등가물이니까. 조국의 위대함, 조국의 큰 울림이 바로 ‘청춘’이었다는 것. 이 ‘청춘’이란 무엇보다 직접적으로는 몸뚱이가 아닐 것인가.
몸뚱이란 감각이 정신에 앞서는 것. 가장 원초적인 것이 감각이니까. 이 몸뚱이로 제국의 수도에 부딪히기. 그 첫번째 시도가 바로 <신라의 석류>(1925).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동인지 <거리>(街)에 실린 이것은 일어로 쓴 최초의 작품. “보시라, 일어와 한국어가 등가이다”라고. 그것이 신라의 석류였다는 것. 그것을 쪼개면 홍보석이라는 것. 이 홍보석의 아름다움을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신라 천 년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여기는 헤이안조(平安朝) 천 년 고도 교토(京都)임에 주목할 것이오. 이 청년은 이 천 년 고도에서 시적 감각을 익혔소. 조국의 무게만큼의 비중으로 말이외다. 감각의 날카로움, 전례 없는 언어의 촉수로 사물을 꿰뚫기, 온몸으로 언어의 촉수화되기. “연정은 그림자마저 벗자/ 산드랗게 얼어라! 귀뚜라미처럼”, “해발 오천 피트 권운층 위에/ 그싯는 성냥불!”에서 이 촉수를 보시라. 시의 새 경지를 연 것은 모두가 아는 일. 그런데 문제는 또 있소. 그것이 과연 ‘조국’의 울림과 등가일 수 있을까. 왜냐면 시간이 갈수록 <장수산>에서 보듯 <시경>의 고대에로 아득히 물러서고 있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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