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론 재음미
-정지용의 경우

등록 2012-10-14 20:23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도쿄(東京)/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청년의 가슴은 바다보다 더 설레었다”(<해협의 로맨티시즘>, 1938)라고 임화는 읊었소. 이광수들도 그러했다고 김동인이 증언했소. “네 칼로 너를 치리라!”라고. 심지어 <오감도>의 이상조차 그러하지 않았을까. 과연 제국 일본의 수도 도쿄에는 진리, 학문, 예술, 과학이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있었던 것일까. 직접 가볼 수밖에. <오감도>(1931)의 시인은 대번에 속았다고 직감했소. “가짜다!”라고. 올 수도 갈 수도 없어 그는 거기서 죽을 수밖에.

이광수들은 죽지 않고 <무정>(1917), <삼대> <고향>을 썼소. 임화들도 죽지 않고 카프 서기장으로 버틸 대로 버티었소. 홰보다 밝게 타는 별이라 자부했기에 어찌 죽을 수 있으랴. 잠깐, 과연 죽지 않는 방도가 이런 것밖에 없었을까, 라고 누군가 토를 단다면 어떠할까요. 이렇게 토를 단 사람은 필시 이런 시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씨여!”(<해협의 오후 두 시>, 1933)

모든 것이 있다는 도쿄에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했소. 이른바 관부연락선. 한밤중 현해탄을 건너는 청년들에게 어찌 잠이 오겠는가. 자작의 아들도 아니고, 기껏 충청도 옥천 출신의 청년 정지용이 가진 것이라곤 ‘청춘’뿐이었던 것. 이 청춘이란 얼마나 무겁고 굉장한가! 왜냐면 ‘조국’과 등가물이니까. 조국의 위대함, 조국의 큰 울림이 바로 ‘청춘’이었다는 것. 이 ‘청춘’이란 무엇보다 직접적으로는 몸뚱이가 아닐 것인가.

몸뚱이란 감각이 정신에 앞서는 것. 가장 원초적인 것이 감각이니까. 이 몸뚱이로 제국의 수도에 부딪히기. 그 첫번째 시도가 바로 <신라의 석류>(1925).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동인지 <거리>(街)에 실린 이것은 일어로 쓴 최초의 작품. “보시라, 일어와 한국어가 등가이다”라고. 그것이 신라의 석류였다는 것. 그것을 쪼개면 홍보석이라는 것. 이 홍보석의 아름다움을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신라 천 년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여기는 헤이안조(平安朝) 천 년 고도 교토(京都)임에 주목할 것이오. 이 청년은 이 천 년 고도에서 시적 감각을 익혔소. 조국의 무게만큼의 비중으로 말이외다. 감각의 날카로움, 전례 없는 언어의 촉수로 사물을 꿰뚫기, 온몸으로 언어의 촉수화되기. “연정은 그림자마저 벗자/ 산드랗게 얼어라! 귀뚜라미처럼”, “해발 오천 피트 권운층 위에/ 그싯는 성냥불!”에서 이 촉수를 보시라. 시의 새 경지를 연 것은 모두가 아는 일. 그런데 문제는 또 있소. 그것이 과연 ‘조국’의 울림과 등가일 수 있을까. 왜냐면 시간이 갈수록 <장수산>에서 보듯 <시경>의 고대에로 아득히 물러서고 있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김종인, 복귀 사흘만에 또 반발…“박근혜 모든 걸 다하려고 해”
‘광해’ 보고 눈물 쏟은 문재인…“소주 한잔 하죠”
고부 사이, 한 남자 ‘전 양쪽에서 뺨 맞아요’
“내 딸이 성적·학교폭력에 이렇게 고통받는 줄 몰라”
“걸그룹 시구자한테 스킨십하려다 살해협박”
자라는 입으로 소변 본다
[화보] 손연재, 나비처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