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입양 고아에 대한 문학적 성과
-김연수의 ‘심연’, 최윤의 ‘오릭맨스티’에 부쳐

등록 2012-11-11 20:44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밤은 노래한다>(김연수, 2008) 한가운데 놓인 것은 민족주의의 한 변종이었소. 이국에 정착해서 살고자 하는 한국인의 생존방식이 낳은 기묘한 형태란 토착인과의 갈등이기에 앞서 한국인끼리 정리해야 할 민족주의였으니까.

그 연장선에서 이 작가는 입양 고아 문제로 달려들었소. 유럽과 미국 등지에 입양된 한국인의 수는 수십만을 넘으며 이들은 지금쯤 성인이 되어 사회 활동을 시작했소.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쓴 아스트리드 트로치히도 그중의 하나. 스웨덴으로 입양된 그녀가 작가가 되어 한국에 온 것은 2003년. 김연수가 그녀를 만난 뒤의 느낌은 이런 것이었다 하오. ‘피는 물만큼 묽다’는 사실. 생모를 찾아 부산을 헤맨 그녀도 사정은 마찬가지. 생물학적으로 피란 동일한 것. 피를 물만큼 묽게 만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2012)은 가상의 미국 여류 작가 카밀라 포트만을 다루었소. 그녀는 17살에, 자기를 버린 모친을 찾아 모험을 하오. 김연수는 부질없이 온갖 수사학을 동원하며 멋을 부리고 있지만 이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모친의 이름이오. 정지은, 그리고 자기의 이름이 정희재라는 것. 정지은과 정희재란 결국 동일한 인물임을 직감하오.

이 경우 진일보한 점은 ‘심연’이란 단어이오. 사람 사이엔 ‘심연’이 있다는 것. 이를 건너가는 방도가 있기나 한 것일까. 심연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살아남기. 어째야 할까. 아마도 김연수는 작가 되기, 작품 쓰기만이 이 ‘심연’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소. 과연 그러할까. 그것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친 김연수의 문제의식이지만 작가라 해서 ‘심연’을 수사학의 고공비행으로 건너뛰어도 되는 것일까.

여기까지 따진 독자라면 필시 <오릭맨스티>(최윤, 2011)에 주목할 것이오. 여기 세 살 적에 벨기에로 입양된 사내아이가 있소. 이름은 유진 뒤발. 한국 이름은 박유진. 부모를 찾습니다, 라고 친척들에 문의합니다. 이 얼마나 신파조이며 상투적인가. 그렇지만 이 신파조가 그 너머에 있는 괴물에 접근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면 어떠할까. 곧 ‘오릭맨스티’.

이 기묘한 말은 벨기에어에도, 영어에도 없소. 혹시 한국어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든 이 말의 뜻을 찾아야 했소. 발음만 있는, 그것도 내면에서 숨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도대체 뜻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 입양아는 기이한 병을 앓습니다. 미증유의 희귀한 병이라 작가는 말했소. 수시로 찾아오는 혼절상태. 이 상태에서 깨어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 왈, ‘오릭맨스티’.

“세상에는 뜻으로 번역되지 않는 신비로운 지대”가 있소. 어느 나라 말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느 나라 말에도 없는 것. ‘오릭맨스티’라는 발음만 있는 것. 청년 박유진이 한국에 와서 친척을 모조리 만나고 헤매어도 허사일 수밖에. 왜냐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원리적으로는 입양 고아이니까. 이 사실을 깨칠 때 비로소 서로의 ‘심연’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으니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