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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듯 프랑스혁명사 쓰고 싶어”

등록 2013-01-29 19:39수정 2013-01-29 20:48

새 길을 여는 한국의 인문학자들
④ ‘문화사’ 연구해온 서양사학자 주명철
역사가 품은 인간의 삶은 너무도 다양해서, 어느 단면을 잘라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러니만큼 역사학자는 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주물러 대중에게 전하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서양사학자 주명철(사진) 한국교원대 교수를 24일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문화사’ 연구에 집중해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온 학자다. 그는 방학 때라 주로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자택에 머물며 글을 쓰고 있는데, 인터뷰를 하러 모처럼 학교에 나왔다고 했다. 그가 지금 매달리고 있는 작업은 <프랑스 혁명 이야기>(가제)의 집필이다. 전체 10권으로 계획하고 있으며, 여태까지 3권 분량의 원고를 써낸 상태라고 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표준 줄거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세부적인 내용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데 세부적인 내용을 모른다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르주아계급의 성장-혁명의 폭발-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나폴레옹의 등장 등으로 이어지는 건조한 표준 줄거리를 넘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도록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써보겠다는 것이다. 국외에는 이런 취지의 저술이 꽤 있는데, 국내 저작은 아직 없는 현실도 마음에 늘 걸렸다고 한다.

주 교수의 목표는 “사료를 바탕으로 삼되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이다. 가장 비중 있게 참고하고 있는 사료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의회에서의 회의 내용을 담은 100여권짜리 ‘의회문서’, 국민의회의 역사를 담은 40여권짜리 ‘의회역사’, 당시 주요 인물들의 회고록 등이라 한다. 이런 사료들을 근거로 삼아,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듯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고 한다. 각 권마다 1년 안팎의 시간을 다루어 그 흐름도 촘촘한 편이다. 1권은 혁명의 배경이 되는 ‘앙시앵 레짐’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혁명의 도화선이 된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까지, 2권은 베르사유 행진이 있었던 1789년 10월 초까지, 3~4권은 바스티유 점령 한 돌이 되는 1790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서양사학자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
서양사학자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
100여권짜리 당시 국민의회 문서
주요 인물들 회고록 등 사료 근거
혁명기의 사람들 삶 밀착해 다뤄
10권 목표했는데 3권분량 원고 써

“새 사료 바탕한 새 관점 시도는
역사 더 풍부하게 보고싶기 때문”

“표준 줄거리만 알아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예컨대 ‘바스티유 점령’이 일어났던 1789년 7월14일은 프랑스의 국경일일 정도로 중요한 날인데, 그날의 중요성은 이듬해인 1790년 7월14일 ‘시민연맹의 축제’가 조직되면서 비로소 부각되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했으며, 혁명에 얼마나 큰 희망을 걸었는지 알아야 프랑스 혁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국외에 있는 원사료를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 교수는 파리 유학 시절부터 프랑스도서관에 있는 ‘바스티유 고문서’(바스티유 수감자들에 대한 기록)를 손으로 일일이 베껴내는 등 원사료 확보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바스티유 고문서를 통해 혁명을 앞둔 프랑스 사회에서 인쇄매체가 어떤 구실을 했는가 밝혀낸 <서양 금서의 문화사>(2006)나 혁명기의 인쇄물과 사건기록문 등을 통해 당시 여론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됐는가 보여준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2004) 등은 그런 노력 속에 탄생한 저작들이다.

주 교수는 스스로 “‘새로운 문화사’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역사학은 정치를 중심으로 한 거시적 접근에서부터 점차 경제·사회·문화 등을 중심으로 한 미시적 접근으로 발전해왔는데, 자신의 학문적 노력 역시 이런 흐름 위에 놓여 있으며 특히 ‘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사료의 확보, 새로운 관점의 시도는 모두 역사를 좀더 풍부하고 자세하게 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한다”며 “문화사 연구는 인류학·언어학 등 인접 학문으로부터 새롭고 다양한 사료와 관점을 제공받을 수 있기에 그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 이야기>는 기존 사료에 대한 기초적인 풀이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문화사적 접근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에피소드 중심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문화사적 접근이 “양념처럼” 스며들 것이라 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이야기할 것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예전엔 ‘아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가 도서관을 훑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는데, 최근엔 기술이 발달해서 한국에서도 디지털화된 수많은 프랑스 원사료들을 접할 수 있어요.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요.”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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