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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저우쭤런과 백철
- 문학인의 대화

등록 2013-03-03 20:14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전공이 전공인지라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나마 들은 바 있소. 그 친아우인 저우쭤런에 대해서도 그렇소. 베이징이 일본군에 지배된 것은 1937년이오. 장제스 중심의 세력은 충칭으로 거점을 옮겨 바야흐로 중국은 양분 상태. 일 점령군 아래 놓인 중국인을 통치하는 정치가가 이른바 왕자오밍. 그 교육 총책임자이자 베이징대학 일문학 교수가 바로 저우쭤런이었소.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영락없이 이른바 한간(漢奸)의 괴수로 그에게 엄한 징벌이 주어졌다 하오. 장제스 정부도 그러했고 마오쩌둥 정부도 그러했다 하오. 그러나 저우언라이의 주선으로 연금 상태의 그로 하여금 일본 고전 번역에 종사케 했다 하오.

이러한 것은 풍문의 일종이긴 하나 내 전공과 관련된 부분이 두 군데 있소. 하나는 내가 멋대로 읽은 저우쭤런의 <이완용과 박열>(1926)이오. 이완용이 위독할 때 일본 황실이 포도주를 한 상자 주었다 하오. 박열 부부로 말할 것 같으면 일왕 타도를 내세운 이른바 대역 사건의 주동자. 이에 대해 저우쭤런은 이렇게 썼소. 만일 일본이 중국 합병을 도모한다면 중국엔 많은 이완용이 나올 것으로 믿으나 다만 한 명이라도 박열 부부가 나올까 여부는 의심스럽다, 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소. “조선 민족이여 아무쪼록 미약한 개인적 경의를 받아주기를 바란다”라고. 민족의 독립과 민족의식에 문학을 종속시켜 온 나로서는 이런 구절이, 앞뒤 돌봄 없이, 뜻깊어 보였소. 한갓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에 한국 근대문학이 걸려 있고 육당도 춘원도 마찬가지였다고 나는 믿었던 것이오.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평론가 백철과 저우쭤런의 면담. 1942년 초여름, 만난 곳은 붉은 벽 대문을 셋이나 지난 서재 겸 응접실. “백씨 환영하오.” 뜻밖의 영어. 마침 그의 일본인 부인이 일어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하오. <매일신보> 베이징 특파원답게 백철이 기록을 하자 저우쭤런은 이를 막았소. 기자와의 만남이 아니라는 것, 조선의 문학자와의 만남이라는 것.

당연히도 이런 물음이 나올 수밖에. 집안 일로 절교한 바 있는 형이지만, 루쉰을 아느냐, 라고. <아큐정전> 등이 널리 알려졌다고 하자 조선의 독자 수준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하오. 이번엔 백철의 차례. 지금은 뭣을 하시느냐. 왈, 별로 새로 하는 일은 없고 과거에 써둔 것, 발표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두 시간의 대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백철은 이렇게 썼소. 그가 베이징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점령 지구가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살기 위해, 나아가 더 잘 살기 위해 <매일신보> 베이징 특파원으로 달려간 백철이 어디까지가 정치인이고 또 어디까지가 문학인인가를 판별할 그런 기준을 나는 갖고 있지 못하오. 그 때문에 나는 아직도 육당, 춘원을 문학인의 자리에 올려놓지 못했소.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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